'이희수 교수의 세계도시문화기행 02 아프리카 문명도시' 중 '11) 레바논 베이루트 - 내전으로 얼룩진 중동의 진주'를 읽었다.
베이루트 - Daum 백과
이탈리아의 사진가 가브리엘레 바질리코의 베이루트 사진집이다.
레바논은 중동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다. 사람이 살기 좋다는 말이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인류가 가장 일찍부터 해양 문화를 가꾸며 살았던 곳이다. 인근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문명이 꽃을 피우기 훨씬 전부터다. 그 결과 페니키아라는 지중해 최초의 교역 제국을 역사에 우뚝 솟게 한 지역이다.
베이루트(Beirut)는 레바논의 수도다. 베이루트는 레바논의 반 이상이다. 전체 인구 3백만의 절반 이상이 베이루트와 그 주변에 모여 살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은, 레바논이 프랑스 식민 치하에서 독립하면서 본래 그 땅의 주인인 다수파 아랍인에게 권력의 우위를 주지 않고, 프랑스 이익을 대변하는 기독교계 소수파에게 대통령직과 통치 특권을 주면서 시작되었다. 그 결과 레바논은 1967년 6일 전쟁(1967년 6월 5일에 발발한 이스라엘과 아랍국의 전쟁으로, 6일 만에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었다)과 1973년의 4차 중동 전쟁 모두에서 아랍의 일원으로 참가할 수 없었다.
두 전쟁의 패배로, 이스라엘과 인근 아랍 국가에서 몰려온 팔레스타인 난민의 수는 급증하고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인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거점도 레바논으로 옮겨왔다.
이에 반대하는 기독교 마론파(Maronites)의 팔렝케 무장 조직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잦은 충돌을 거듭하던 두 세력은 급기야 1975년 4월 팔렝케가 베이루트 교외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이 탄 버스를 습격하여 27명이 사망함으로써 15년의 기나긴 내전의 막이 올랐다.
이스라엘은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하고, 이에 대항해 시리아와 이란이 팔레스타인의 배후 세력으로 내전에 개입하면서 레바논은 걷잡을 수 없는 보복과 살상의 악순환을 거듭했다. 18개의 각기 다른 종파와 민족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늘은 친구가 되었다가 내일은 적이 되는 상황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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