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칼리오페/서사시 장의 후반부는 고국으로 귀환한 화자를 냉대하는 한국의 국가주의 실상이 묘사된다. 18년 만에 고국을 방문한 화자는 “나는 당신을 압니다. 나는 당신을 알아요.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이나 당신을 만나게 되길 기다렸습니다.”라고 정서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다양한 제복을 입은 그들’은 “당신이 언제 이 나라를 떠났고 왜 떠났으며 왜 다시 돌아왔는지” 캐묻고 의심하고 심문할 뿐이다. 결국 디아스포라 화자는 자신이 이미 “그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미 “다른 언어, 제2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녀는 고국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고체계를 가진 이방인인 것이다. 더욱이 고국은 18년 전 화자의 가족이 경험한 4.19 혁명의 진압과정을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또 다른 독재 정권에 의해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즉 한국은 “민주주의를 채택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국가 그 자신을 연속적으로 굴절시키는 기계”일 뿐이고 ‘멜포메네/비극’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출처: 황은덕 - 디아스포라 여성 예술가: 차학경의 『딕테』(2010)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07297


'악스트 Axt 2021.11.12'에 발표한 장혜령 시인의 에세이 '그녀들의 목소리가 보이도록 — 차학경'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대한뉴스: 419 추념식

1960년 4·19 시위가 일어나고,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녀의 안위를 염려하던 부모는 2년 뒤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가족이 한꺼번에 이주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서 차학경은 부모와 얼마간 떨어져 지내야만 했다. 열 살 무렵의 그녀는 영어도 못하는 채로 부모 없이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와이에서 학교를 다녔다. 3년 후, 가족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고 그녀는 그곳 대학에서 미술과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미술가로서 성장한다. 1979년에는 미국으로 떠난 지 1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그녀는 독재 정권 말기의 억압적인 한국사회에서 자신이 그려왔던 조국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1980년 그녀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미술 창작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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