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미술사’(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의 ‘01. 마네와 드가 - 찢어진 초상화’에 서술된 앵그르에 관한 부분이다. 

 

Madame Moitessier (study), 1851 -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 WikiArt.org


신고전주의 양식 - Daum 백과

Portrait of Madame Moitessier Standing, 1851 -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 WikiArt.org







드가는 자신이 영웅처럼 여기던 신고전주의의 대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겼다. 드가는 1855년 앵그르를 경외하는 학생으로서 그의 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날 앵그르는 드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을 그리시오, 젊은이. 실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더 많은 선을 그리시오. 그러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거요."

드가 세대에게 앵그르라는 이름은 자랑스럽고 흔들림 없는 권위를 의미했다. 그러한 권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절제된 선형적 미술을 향한 감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는 열정의 경지에 가까웠고 반쯤은 신비주의적인 면도 있었다. 앵그르는 이렇게 말했다. "고대인들은 모든 걸 보았고, 모든 걸 이해했으며, 모든 걸 느꼈고, 모든 걸 묘사했다." 앵그르가 생각하는 미술에서의 선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무엇만이 아닌 궁극적인 것이었다. "드로잉은 미술의 정직함에 해당한다."라는

발언에서도 비춰지듯 그의 신념에는 도덕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신념을 고수하면서 사회적 올바름과 끈기라는 개념을 옹호했고 인내를 소중히 여겼다.

앵그르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거칠고 대담했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란 모름지기 아카데믹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즉, 예술은 확고한 기준과 엄격한 훈련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쉽지 않은 힘겨운 과정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앵그르는 거장들 중에서도 작업을 굉장히 어렵게 해나가는 인물이었다. 앵그르의 누드와 초상화는 고요함을 풍겼지만, 화가 본인은 이를 성취하기 위해 진정으로 고뇌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끝없는 문제에 봉착했던 그는 자신을 분개하게 만든 의뢰 작업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만약 의뢰인들이 초상화 작업에 따르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들은 날 불쌍히 여겼을 것이다." 앵그르는 끝없이 사전조사를 했고 몇 달, 아니 몇 년간 이어온 작업의 구상을 폐기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긴 활동기간 동안 완벽주의에 시달리듯 몇 번이고 같은 주제로 되돌아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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