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도 오랜만에 산책을 길게 해서인지 오늘 김연수의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만나졌다. 문예지 자음과 모음 2008 가을호(창간호) 수록작이자 2009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꼭 십년전인 2013년 11월에 발간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려 있다. 


소설에 나온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은 실재하는 책이다.





그는 제정신으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책, 지루해서 펼치는 순간 바로 잠들 만한 책, 단 한 문장도 읽고 싶지 않은 책을 찾아 서가를 뒤적이다가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왜 그런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암환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찍을 속셈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책갈피를 넘기다가 그는 ‘거울기법’이라는, 의사와 대화를 준비하는 암환자를 위한 테크닉을 발견했다.

그렇게 산책을 위해 사람들을 만나던 어느 날, 그는 책상 위에 쌓여 있던 ‘걱정하는 일들의 목록’을 치우다가 그 밑에 엎어놓은 『암환자를 위한 생존전략』을 발견했다. 그는 다시 책을 훑어보다가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저자의 연락처를 문의했다. 저자를 통해서 그는 쉰한 살의 나이에 폐암 선고를 받았던 Y씨와 연결될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피부를 오그라들게 만들던 방사선치료에 회의를 느끼고 존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주장하던 Y씨는 "부작용으로 고통받느니 차라리 내 몸의 병으로 고통받겠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대학병원을 떠났다.

"제 말이 다음 작품을 찍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제목이 뭐라고 하셨더라."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에요."

"어때요? 괜찮아요? 조금 더 걸어볼까요?" Y씨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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