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주디스 버틀러 지음, 양효실 옮김)의 '2장 죽일 수 없는 - 레비나스 대 레비나스' 중 '어디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까?'가 출처이다. * 레비나스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5r4163n7 

"가자지구 공격 중단하라"


"타자의 얼굴에 깃든 불확실성과 무력함은 내게는 죽이고 싶은 유혹이면서 동시에 평화에 대한 호소, 곧 ‘죽이지 말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먼저 내게 해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혹은 누군가가 내게 해를 입힐 것 같지 않은데도 나는 그 타자를 죽이고 싶어 할까? 단도직입적으로 정치적 이야기로 들어가면 결국 우리는 거기서, 정치 한가운데서 윤리적 요구를 만나게 되는 것일까? 레비나스는 여러 사례를 들어서 윤리적인 것은 이미 진행 중인 싸움의 한가운데서 출현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가 얼굴과의 만남을 ‘살인 유혹과 동시에 살인 금지’인 것으로 서술할 때, 그는 금지를 생산하는 불안과 욕망도 거론한다.

레비나스가 보기에 비폭력은 평화로운 장소보다는 오히려 폭력을 겪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폭력을 입힐 것이라는 두려움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으로부터 도래한다.

평화란 항상 어느 정도는 폭력적인 과정이고, 비폭력이란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종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 전통이 학살과 슬픔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적 이성을 세운다고 고발한다. 스스로의 전쟁사를 대면했을 때, 유럽은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인간 관계성 개념은 다음과 같은 측면, 곧 인간의 궁핍을 타자들의 삶을 보호하려는 어떤 책임과 연결하는 측면을 작동시키는 형상들을 통해서만 정교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덧없는 존재, 먼지, 재와 같기에,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삶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삶이 사라지지 않도록 투쟁해야 한다.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바로 이 사실에 토대해서 살인적인 공격도 어떤 니힐리즘의 형태도 아닌 의무가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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