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글날이라서 박완서의 일본어 체험이 담긴 산문 '내 소설 속의 식민지 시대'('호미' 수록)을 읽었는데 이 글의 도입부에 서술된, 저자가 우리 나라에서 열린 행사(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온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어떤 말을 듣고 생각한 바를 발췌한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였다. 나는 발표자도 토론자도 아니었지만 문학하는 사람으로 아주 무관심할 수만은 없어서 시간 나는 날 나가서 기웃대다가 마침 오에 겐자부로 씨의 발표장에 들르게 되었다. 그의 발표는 이미 끝난 듯 질문을 받고 있었는데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그는 자기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그가 어려서부터 어머니한테 자주 들은 말이 ‘시카라레루 도고로니 이키나사이(야단맞는 데로 가라)’였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전제로 답변을 시작한 걸로 봐서 내가 못 들은 우리 측의 질문은 아마도 일본인이나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나무람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되었다. 그의 답변 내용을 거의 다 잊어버린 지금까지도 ‘시카라레루 도고로니 이키나사이’라는 한마디는 또렷이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게 단순히 오에 씨 어머니 개인의 좀 특별한 자녀교육관 정도가 아니라 일본인 공통의 태도나 어법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겸손과 교만을 둘 다 함축한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나라가 식민지로 삼고 억압하고 착취했던 나라를 ‘시카라레루 도고로’로 인식하고 속죄하는 양 겸손을 떨어서 덧들이지 않으려 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일본인을 접할 때 우정이나 친애감을 나타내기에 앞서 뭔가 트집을 잡고 야단을 쳐보고 싶은 충동을 경험하게 된다. 야단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나 자신감인 것처럼 야단쳐야 체면이 서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열등감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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