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여 어린 시절 학교에서 일어로 공부한 고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산문집 '호미' 중 '내 소설 속의 식민지 시대'로부터 옮긴다. 같은 상황에 처한 영화 '말모이'의 어린이들도 떠오른다.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 작전’] http://cine21.com/news/view/?mag_id=92104



영화 말모이(2018)

그렇게 조부모 슬하에서 평화로운 유년기를 누리다가 갑자기 서울로 끌려와서 소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일제시대라는 딴 세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마치 생전 수영은커녕 물이라면 먹는 물밖에 모르고 살다가 깊은 물 속으로 떠밀린 것처럼 허우적댔다. 제일 두려운 게 언어의 장벽이었다. 소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조선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국어 즉 일본어 상용을 철칙으로 했다. 교실로 들어가기 전 2주일쯤을 야외수업을 하면서 學校, 先生, 運動場, 便所, 敎室 등의 낱말을 일본말로 반복해서 가르쳤고, 곧 학교에 있는 사물과 규칙을 일본말로 익히는 데는 딴 아이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 교실로 들어가 교과서로 수업을 받게 되면서 나는 일본의 ‘가타가나’를 도무지 외울 수가 없었다.

뭐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한글은 ‘가’는 가라고밖에 읽을 수 없는 까닭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서 소리가 되나 하는 이치만 알면 그다음은 그야말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게 돼 있었다. 나는 일본의 ‘가타가나’의 글씨들이 왜 저를 ‘가’라고 또는 ‘아’라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덮어놓고 외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 나는 꼴찌를 못 면했고 학교생활이 지옥 같았다. 우리 집은 빈촌에 살면서도 교육열이 유난한 엄마 때문에 거주지를 옮겨서 중산층 동네에 위치한 학교로 보내졌기 때문에 나는 더욱 지진아 취급을 받았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학교 오기 전에 ‘가타가나’ 정도는 다들 알고 왔기 때문이다. 1년을 꼬박 다니고 나서 교과서를 제대로 읽을 수 있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가 없어서 교과서 외의 일본말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고 엄한 가정교육으로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 생각을 지어서 말할 자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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