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이 알려주길 작년 시월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 '알렉시'를 읽었다. 문학동네본 말고 품절된 열림원본으로. 그때 읽은 논문으로부터 발췌한 글을 올린다('알렉시'의 주요 내용이 나옴을 미리 알려둔다). 


[‘알렉시 혹은 공허한 투쟁에 관하여(이하 알렉시)’는 작가 지망생이었던 유르스나르의 공식적인 첫 등단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보다는 미술에 훨씬 심취했던 그녀의 작품에서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주인공 알렉시가 결혼 후에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닫고 아내 모니크에게 띄우는 이별의 편지로, 1인칭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수정본 출간에 맞춰 1963년에 덧붙여진 서문에서, 작가는 “모든 일인칭 이야기가 그렇듯이 알렉시는 한 목소리의 초상”으로, “그 목소리가 고유의 음역과 고유의 음색을 지니도록 해야만 했다”고 쓰고 있다.

 

‘음역’과 ‘음색’은 사람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 말과 음계, 글과 음악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유르스나르는 알렉시를 병약하고, 가난하고, 고독한 피아니스트로 설정함으로써 ‘저주받은 예술가’라는 전형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재생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통해 자아의 긍정, 자기와의 화해를 통해 ‘구원받는’ 예술가의 모습을 창조함으로써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음악가 알렉시가 아내에게 남기는 편지는 달빛 그윽한 밤에 호수 위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소나타의 곡조를 닮아 있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음악은 자신의 남다른 성적 취향에 대해 어린 시절엔 어머니에게도, 학창 시절엔 친구들에게도, 연애 시절엔 곧 결혼하게 될 여자에게도 절대 말할 수 없었던, 알렉시의 침묵을 표현해주는 유일한 도구이자 말이 된다.

 

또한 그에게 있어 음악은 죽음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생명의 원천이다. 알렉시가 성적 본능에 충실해 ‘감각의 쾌락’에 충실할 때 그는 끊임없이 희열에 차 음악을 연주하지만, 모니크와의 결혼으로 성적 욕망을 억압하고 평범한 삶을 살 때는 음악을 완전히 포기한다.

 

그가 이 년 동안 닫혀 있던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다시 음악을 연주하면서 비로소 그는 자신의 병, 동성애가 아니라 자신의 성적 취향을 억압함으로써 생긴 자아 분열의 병으로부터 치유된다. 알렉시에게 있어 음악은 자기와의 화해와 치유로서 기능한다.

 

예술이 유르스나르에게 “갈 길을 밝혀주는 어떤 빛”이 되어 작가로서의 그녀의 인생을 안내해 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소설들에서 예술은 작가의 관심이 자아로부터 타자, 타자로부터 인간으로 확산되는, “인간을 향한 여정”의 핵심적인 매개체로 기능한다.]출처:오정숙-유르스나르의 1930년대 소설에 나타난 예술의 역할, 예술가의 초상(2019)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466596 * 이 논문의 저자인 불문학자 오정숙 교수는 유르스나르의 '동양 이야기'를 번역했고 '마르그리뜨 유르스나르 - 영원한 방랑자'를 썼다. 


Château Bilquin-de Cartier (Marchienne-au-Pont) - Marguerite Yourcenar By Jmh2o - Own work, CC BY-SA 3.0, 위키미디어커먼즈 * [네이버 지식백과]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2350&cid=40942&categoryId=40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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