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의 가족 중 블랑슈의 이야기를 클래식 클라우드 '모네'(허나영 지음)로부터 찾아 옮긴다. 모네가 재혼한 알리스의 딸인 블랑슈는 모네의 장남 - 첫 부인 카미유 사이에서 태어난 - 장과 부부가 된다(강신재의 단편소설 '젊은 느티나무'가 떠오른다). 의붓남매가 결혼하면서 클로드 모네는 의붓딸을 며느리로 두게 된 것이다. 블랑슈도 화가이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Blanche_Hosched%C3%A9_Monet 블랑슈의 그림들


모네가 그린 블랑슈 1880 By Claude Monet - MeisterDrucke,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블랑슈가 그린 지베르니 풍경 By Blanche Hoschedé Monet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커먼즈


2019년 여름 지베르니의 모네 가족묘 By Qwertzu111111 - Own wo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아래 발췌글 마지막에 나온, 가족묘에 함께 묻힌 미셸은 클로드 모네와 카미유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알리스의 딸들은 파파 모네를 곧잘 따랐다. 특히 둘째인 블랑슈가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모네는 자신이 부댕에게 배웠던 대로 블랑슈에게 자연 속에서 보이는 빛과 인상을 느끼며 그리라고 가르쳐주었다.
알리스의 둘째 딸 블랑슈는 모네의 첫째 아들 장과 결혼했다. 모네가 사랑하는 딸인 블랑슈가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이제 며느리로서 그의 곁에 있게 된 것이다.
몸이 계속 좋지 않던 알리스가 1911년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모네의 건강도 더욱 악화되었다. 1912년 7월에는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왼쪽 눈마저 나빠지기 시작했다.
모네의 눈 상태가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동안, 1914년에 큰 아들 장이 병에 걸려 마흔여섯 살의 나이로 목숨을 잃었다.
이렇듯 불안한 상태의 모네를 보살핀 사람이 딸 블랑슈였다. 당시 자주 모네를 찾아와 말벗이 되어주었던 클레망소는 항상 친절하게 모네를 돌보는 블랑슈를 ‘푸른 천사’라고 불렀다.
모네는 완전히 실명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블랑슈와 클레망소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모네를 보필하던 사랑스러운 딸이자 며느리인 블랑슈와 모네 예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애써준 클레망소가 함께한 마지막은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 아래쪽에 작은 화단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여기 우리의 친구, 클로드 모네가 잠들다"라고 쓰인 모네의 묘비가 있다. 알리스, 미셸, 장, 블랑슈 등이 함께 묻힌 가족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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