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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산 마르코 광장 [Piazza San Marco]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63789&cid=42864&categoryId=50859


 '맛의 천재'(알렉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로부터 발췌한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거창하게 상호를 지었는데 결국 주인장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1720년 12월 29일, 행정부 신관 건물 밑(산마르코 성당을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에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Floriano Francesconi가 ‘승리의 베네치아Alla Venezia Trionfante’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들 주인의 이름으로 이 카페를 불렀기 때문에 결국에는 ‘플로리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말았다.

18세기 중반에 베네치아에서 영업을 하던 카페는 100개가 훨씬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18세기 말 커피숍은 벌써 311개로 늘어나 있었고, 이는 시민 500명당 하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아마도 유럽의 도시 가운데 최고 기록일 것이다. 이들 중 34개가 산마르코 광장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하나같이 화려하고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커피숍은 만남의 장소였고, 큰 소리로 낭독하던 신문의 소식을 듣기 위해 모이는 장소였다. 일종의 각성제인 커피는 지적 활동을 촉진하고 의욕을 배가했다. 이 때문에 커피는 활동적인 부르주아 계층이 선호하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반면에 초콜릿 음료는 귀족들의 나태함을 상징했다). 신문과 커피를 항상 같이 떠올리던 습관은, 1764년 피에트로 베리가 밀라노에서 신문을 창간하며 이름을 <일 카페Il caffè>라고 지었다는 사실, 1760년 가스파로 고치Gasparo Gozzi가 ‘승리의 베네치아’ 카페 내부에 자신의 신문 <가체타 베네타Gazzetta veneta>의 편집실을 마련했다는 사실 등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카페가 꽉 들어찬 도시와 신문 발행 사이에 어쩌면 모종의 연관성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의 커피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특징 중 하나는 커피의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는 점이다. 커피는 초콜릿 음료 가격의 3분의 1밖에 하지 않았다.

커피를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데 또 한몫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18세기에 "커피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전형적인 유대인 음료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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