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및 여성살인 사건을 목도하며 펼쳐본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 어떤 애도와 싸움의 기록'(2016)에 수록된 여성학자 정희진의 해제 '가장 오래된 문명, 여성 혐오'로부터 옮긴 글이다.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언급하면, "남성 혐오", "묻지마"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용의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라고 분명히 답했는데, 무엇을 묻지 말라는 것인가? 집단으로서 여성과 남성은 계급(sex class) 제도 아래서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대칭적 집단이 아니다. 동등한 ‘여혐 vs 남혐’이 가능하다면, 이미 성차별 사회가 아닌 것이다.

여성 혐오 없이는 가부장제, 자본주의, 나이/외모주의, 장애인 차별,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도 작동하지 않는다. 여성은 가장 큰 타자(他者) 집단이며, 타자를 상징한다. 모든 언어와 인식 체계는 성별화된 은유(gender metaphor)에 기반하고 있다.

내가 가정폭력 상담을 했던 남성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늘 내게 호소했다. "나는 ‘집사람’을 때렸지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니까요." "나는 목을 졸랐지 폭력을 쓴 게 아니라니까요." "나는 교육을 시켰지 때린 게 아니라니까요." "제발 ‘폭력’, ‘폭력’ 하지 마세요. 선생님(나)이 말하는 게 진짜 폭력이에요."

누가 언어를 전유할 것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성 혐오가 여성의 입장에서 ‘독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피해자의 권리이자 고인에 대한 예의다.

이 글의 주제는 강남역 사건의 성격은 무엇인가다. 나의 지력(知力)으로는 이렇게 요약할 수밖에 없다. 5·18은 "공산 폭도의 반란"이었는가? "정치 군인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국민을 학살한 내전"이었는가._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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