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임 교수의 '베케트 읽기' 중 베케트와 조이스에 관한 부분이다. 

Samuel Beckett in Profile, 1970 - Avigdor Arikha - WikiArt.org


문학 실험과 아방가르드 운동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의 2년 동안 베케트는 교수로서의 성과보다는 그를 작가로 이끈 커다란 경험들을 하게 된다. 첫째로 아일랜드 출신의 대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를 만난 일을 들 수 있다. 조이스를 만남으로써 베케트는 아일랜드를 넘어서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대륙의 문화계와 접하게 된다. 베케트는 눈병을 앓고 있던 조이스에게 책을 읽어주고 대필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 베케트는 조이스의 문체나 글 쓰는 방식을 모방하기도 했으나, 곧 조이스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게 된다. 베케트는 조이스가 성취한 것은 "서사적인 것, 영웅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곧 "같은 길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한다. 베케트는 조이스가 언어의 힘을 믿는 반면 자신은 존재의 허약함을 탐구함에 있어서 언어의 부적절함을 보여주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글쓰기란 베케트에게 "표면 아래로 들어가" "존재의 본질적인 취약함"으로 향하는 것인데 언어는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무력하다는 것이다. 조이스와의 관계는 베케트를 짝사랑한 조이스의 딸, 루시아(Lucia)의 우울증 발병과 함께 끝이 나지만 조이스는 여전히 그의 삶에 중요한 인물로 남게 된다.

베케트는 "전지전능(omniscience and omnipotence)"을 추구하는 제임스 조이스와 달리 자신은 "무능과 무지(impotence, ignorance)"를 가지고 예술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928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캠벌 대학에서 불어와 영어 강의. 10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2년간의 교환 교수 생활 시작. 전임자인 토마스 맥그리비의 소개로 제임스 조이스를 만남. (연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