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너(1918) (퍼블릭도메인, 위키미디어커먼즈) 캐나다 토론토에서 비행사 훈련을 받던 시절의 사진.  


영미권 산문집 '천천히, 스미는'에 수록된 윌리엄 포크너의 '서문'으로부터 일부 옮긴다. 포크너는 원래 장래희망이 공군 영웅이었던 것이다.


영화 '쿠오 바디스'(1951) 포스터(퍼블릭도메인, 위키미디어커먼즈)


* 곧 팔월이다. 


할아버지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다양하고 폭넓은 책이 두루 있는 서재를 갖추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내 교육의 대부분은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소설 취향은 스콧이나 뒤마처럼 낭만적 열정을 거침없이 표현한 작가들이었다. 하지만 잡다하게 다른 소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할머니 이름과 1880년대, 1890년대 날짜가 적힌 것으로 보아 분명 할머니가 되는 대로 고른 책들인 듯했다.

이런 책들 중에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가 쓴 책이 있었다. 얀 소비에스키 왕 통치기 폴란드인들이 거의 단독으로 투르크의 중부유럽 침략을 막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였다. 그 책에도 그 시대의 모든 책, 적어도 할아버지 서재의 다른 책들처럼 머리말, 곧 서문이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서문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등장인물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으로 고통받고, 무엇을 극복하는지 얼른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은 서문을 읽었다. 내가 처음으로 시간을 들여 읽은 서문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 폴란드 역사소설의 거장으로 《불과 검으로》, 《대홍수》, 《보워디욥스키 장군》으로 이어지는 역사소설 3부작을 썼고 1905년 《쿠오 바디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람들의 마음을 북돋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들여 썼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니 참 근사하구나.’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언젠가 나도 책을 쓸 텐데 맨 앞 장에 쓸 만한 생각이 없으면 어쩌나.’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 나는 책을 쓸 생각이 없었다. 내게 미래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그때가 1915년, 1916년이었다. 나는 비행기를 보았고 머리에는 온통 이름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볼, 이멜만, 뵐케, 귀느메르, 비숍.•

나는 얼른 나이가 들어서, 또는 자유를 얻어서, 또는 어떤 식으로든 프랑스로 가서 영예를 얻고 훈장을 받게 될 때를 기다렸다. • 제1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전투기 조종사들.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글을 쓰는 까닭임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알지만 부정하려는 사람도 있다. 감상적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스스로 감상적이라 자백하게 될까봐, 비난받을까봐 부정한다. 무슨 까닭인지 요즘 사람들은 감상적이라는 꼬리표를 부끄럽게 여긴다. 우리 글 쓰는 사람 중에는 마음이 어디 있는지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한 사람도 있다. 마음을 더 천한 샘과 기관, 활동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쓴다. - 윌리엄 포크너, 서문 <Foreword to 《The Faulkner Reader》>(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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