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차 세계대전 발발일이다. 1914년 7월28일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한다.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 중 1차 대전 부분을 읽어본다.



넷플릭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 예고편

[네이버 지식백과] 서부전선 [Western Front, 西部戰線]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1115&cid=40942&categoryId=33450





19세기 중반 독일과 이탈리아 통일 전쟁, 1912~1913년 발칸 전쟁 등 유럽 내의 전쟁은 대체로 짧게 끝났다. 또 1914년 발칸에서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압박하여 통제하에 두고자 기도하면서 발발한 전쟁처럼 더 폭넓은 함의를 띠지도 않았다. 여기서 결정적 변수는 정치였는데, 한 강대국의 외부 간섭이 더 광범위한 전쟁으로 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동맹 체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1914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오스트리아군이 러시아와 심지어 세르비아를 상대로도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1914년에 드러났다. 오스트리아군은 장비도 동원도 지휘도 형편없는 상태로, 오스트리아가 직면한 전략적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충분한 우려 없이 배치됐고 좀 더 일반적으로 경험을 통한 학습도 더뎠다. 러시아와 세르비아 둘 다를 상대로 공세를 취한다는 결정을 내린데다 정면 전술에 의존하여 상황을 더 악화되게 만들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군 지휘는 계속해서 무능을 노출했다.

독일군은 1914년과 1916년 서부 전선 공세에서 전략·작전 차원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이는 1918년에 다시금 입증됐다. 독일은 협상군의 투지에 대해 오판하고 협상국의 정치적 의지가 전선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따라 쉽게 흔들릴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여 미숙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특히 정치적 함의에 대한 전략적 현실 인식이 부재하고, 전술·작전과 ‘정치적 희망 사항’ 사이에 ‘다리’를 놓을 줄 아는 능력이 부족했다. 일부분 이는 자신들의 비교 우위에 대한 독일군의 이해가 전략이 아니라 전술적 차원에 머물러 있었으며, 전술적 승리만으로는 필승의 전략을 수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18년에 남아 있던 모든 전선에서(동부 전선은 러시아 붕괴와 항복으로 종결됐다) 협상군은 계속 사상자가 불어나는 압박 속에서도 그전까지 군에 도입한 발전의 결실을 맺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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