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구시가지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박완서의 고향은 북녘의 개성이다.
김윤식이 목격한, 박완서가 어머니(홍기숙)의 죽음을 말하며 실향과 통일에 대한 감정과 의견을 털어놓은 장면을 '내가 읽은 박완서'로부터 옮긴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바로 6월25일, 한국전쟁시작일이다.
푸른사상 학술총서 ‘한국문학과 실향.귀향.탈향의 서사’(2016)에 '박완서 문학의 고향 회귀와 근대 도시 개성 / 김종회'가,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가 낸 '약속과 예측 - 연결성과 인문의 미래'(2020)에 '한국전쟁과 젠더화된 생존의 기록: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전시(戰時)의 집에 대한 젠더지리학적 고찰 (권영빈)'이 실려 있고, 인류학자 권헌익의 '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2020)에 박완서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작품이란 글자로 된 것이기에 육성과는 구별된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우연히 내게 주어진 바 있다. 때는 1991년 6월 25일 오후 세시. 곳은 구 동베를린 훔볼트 대학 고젠 분교의 한 세미나실. 북한 문인이 출석하지 않은 ‘한국의 통일과 문학의 역할’의 발표자로 나선 박완서는 「나의 문학과 고향의 의미」를 발표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90세의 장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지만 그리던 고향땅을 생전에 밟아보지 못하셨고 물론 고향땅에 묻히시지도 못했다. 이렇게 철천지한을 풀어보지 못하고 죽은 이가 어찌 어머니뿐이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한을 품은 이들은 계속 죽어갔다. 어떡허든 생전에 한풀이를 하고 싶은 세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결국 통일을 지향하는 힘도 줄어드는구나,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나서 나는 그런 생각을 고쳐먹을 수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된 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슬픔과 함께 멍에를 벗는 것 같은 홀가분함을 느꼈다면 내가 너무 불효한 것일까. 그러나 솔직한 심정이 그러했다. 더는 모순된 이중의 고향, 두 개의 허상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 옆에서 박씨의 숨 고르지 않는 이 목소리를 들으며,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문학도 아니고 고백체도 아니고, 육성이었던 까닭이다. - 자기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처럼 쓴 작가(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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