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때맞춰 중고서점이 나타났다. 자꾸 앞을 막아서는 이 존재의 파고 속에서 그것이 정박지가 되어줄 것이다. 거리의 찬란함과 비참함을 겪은 후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정원에서 가꾼 꽃을 꽃병에 담아 먼지 앉은 책 더미 위에 놓는다. 조금이라도 책방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해서이다.
어디를 보나 책이 있고, 언제나 한결같은 모험의 분위기가 우리 안에 가득 차오른다. 중고 책은 집 잃은 책, 길들지 않은 책이다. 각양각색의 책들이 함께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길들여진 도서관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잡다하게 꽂혀 있는 책 사이에서 뜻밖에 전혀 몰랐던 책을 만날 수도 있고, 운이 좋으면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서점을 둘러보며 그렇게 우리는 무명의 존재들, 사라진 존재들과 변덕스럽게 갑작스러운 우정을 쌓게 된다. - 런던 거리 쏘다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