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1세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커먼즈)
[슈미트가 『햄릿』에서 다루는 주권자는 다름 아닌 햄릿으로 대변되는 제임스 Ⅰ세이다. 슈미트는 햄릿을 제임스 Ⅰ세에 대비시킴으로써 햄릿을 가상의 인물로 남겨두지 않고 종교적 갈등과 시대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왕권신수설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을 피력했던 실제 왕으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햄릿-제임스 Ⅰ세가 슈미트가『정치신학』에서 강조하는 주권자의 초월적이고 예외적인 위치를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외성에 기초한 역사성은 예외상태에서 주권자의 위치가 더욱 공고해지는 것처럼 역사적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햄릿』을 신화라는 예외적인 형태로 승격시키고 햄릿-제임스 Ⅰ세의 주권에 초월성을 부여한다.
예외성에 기초한 역사성의 관점은 셰익스피어 당대의 예외적인 상황이 이후 어떻게 영국의 국가 정체성에 기여하는가를 보여주는 슈미트 설명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슈미트는 셰익스피어 드라마가 속한 시기를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침몰한 시기부터 1688년 명예혁명과 함께 스튜어트왕가가 영국의 역사에서 추방된 시기까지로 삼는데, 이 시기가 유럽에서는 종교적 갈등시기에서 벗어나 군주국가로 확립되는 때라면 영국은 아직 ‘야만적’(barbaric)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육지에서 해상으로 영역을 뻗쳐나가는 시기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슈미트가 햄릿-제임스 Ⅰ세를 통해 의도했던 주권에 대한 신화는 역사적 현실의 그림자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종교적 갈등 같은 왕권에 대한 위협을 통해서 다시 무너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슈미트가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왕권의 파열음은『햄릿』을 통해 나타난다. 셰익스피어가『햄릿』에서 보여준 왕위계승은 슈미트가『햄릿』을 통해 추적했던 덴마크 선거, 그에 따른 슈미트 식의 계승을 둘러싼 햄릿과 아버지, 햄릿과 클로디어스, 그리고 햄릿과 포틴브라스의 관계 독법과 다름을 보여줬다. 슈미트가『햄릿』의 왕위계승을 신성한 혈통에 근거해 파악하고자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이미 세습 군주제에서 멀어진 덴마크 선출을 통해서 영국의 왕권 위기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입헌 군주제도 예견했다고 볼 수 있다.] 장선영, 칼 슈미트의『햄릿, 또는 헤큐바』 —정치적 재현과 주권의 문제 (2012)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73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