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고양이가 뒹구르르 하는 표지의 '긴 봄날의 짧은 글'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말년에 쓴 '유리문 안에서'도 수록되어 있다. 아래 옮긴 '유리문 안에서' 38회 내용은 소세키가 어릴 때 꾼 꿈 이야기. 


[소세키의 경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모호하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 그 주위에는 무한한 몽롱한 의식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38장」의 이야기는 화자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화자에게 보여준 애틋한 사랑을 그린 것으로서 매우 구체적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38장」의 마무리에서 화자는 이 구체적인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모르겠다면서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어떤 의식이 있을 때 그 주위에 무한한 몽롱한 의식이 공존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느 날 나는 이층에 올라가 혼자 낮잠을 잔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낮잠을 잘 때면 자주 가위에 눌리곤 했다. (중략)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손발을 움직일 수 없거나, 나중에 생각해봐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략) 아무튼 내 것이 아닌 많은 돈을 써버렸다. 그것을 무슨 목적으로 어에 썼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린 나로서는 변상할 방법이 없어 소심한 나는 자면서도 몹시 괴로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큰 소리를 질러 아래층에 있는 어머니를 불렀다. (중략) 어머니는 내 소리를 듣고 곧 이층으로 올라와 주었다. (중략) 나는 괴로움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그 때 미소를 지으면서 “걱정하지 말거라. 엄마가 얼마든지 돈을 내 줄테니까” 라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매우 기뻤다. 그래서 안심하고 다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나는 이 사건이 전부 꿈인지, 또는 반쯤만 사실인지, 현재도 의아하게 생각한다." (「38장」)

 

「38장」의 마무리에서 이 일화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화자 스스로도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소세키는 작품 속에 꿈이라는 모티프를 많이 다루는 작가이다. 이는 소세키의 트라우마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신경증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소세키는 예술 창작의 원동력으로서의 무의식의 위력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가이다.


출처: 김난희, 나쓰메 소세키의『유리문 안(硝子戸の中)』론 - 말기의 눈에 비친 생의 불가사의 - (2019)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2442986#none


내가 언제 어디서 그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라도 아무튼 내 것이 아닌 큰돈을 다 써버렸다. 무슨 목적으로 어디에 썼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소심하고 어린 나로서는 갚을 능력이 없어 자면서도 괴로워했다. 결국 큰 소리를 질러 아래층에 있는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돈을 얼마든지 줄 테니까." 나는 기뻐 안심하고 다시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 유리문 안에서 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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