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립극단 공연 정보 https://gjart.gwangju.go.kr/ko/cmd.do?opencode=p05074&boper=view&bnum=6574



제4막 / 제1막과 같은 무대. 그러나 창문에 커튼도 없고 그림 한 장 걸려 있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가구도 팔려고 내놓은 듯 한쪽 구석에 쌓여 있다. 공허가 느껴진다. 무대 뒤쪽 출입문 근처에 트렁크와 여행용 보따리들이 쌓여 있다. 왼쪽 문이 열려 있고 그곳에서부터 바랴와 아냐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차피 떠날 거라 오늘은 난로를 피우지 않았습죠. (웃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당신네들하고 떠들어대는 것도 이젠 지쳤죠. 난 일을 하지 않곤 배겨 낼 수가 없습니다. 이 빈둥거리는 두 손이 마치 남의 손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돕니다.

난 지난 봄에 양귀비를 1천 제샤찌나나 심어서 얼마 전에 4만 루블의 순이익을 올렸소. 그 양귀비가 꽃을 활짝 피웠을 땐 정말 그림 같았어! 이렇게 내가 4만 루블을 벌어서 그러겠다는 건데. 그리 고집 부릴 게 뭐 있소? 난…… 단순한 농부란 말이오.


난 자유로운 인간이오. 부자든 가난뱅이든 당신네들 모두가 고귀하다고 여기는 것이 내게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솜털같이 하찮을 뿐이오. 난 당신네들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네들에게 태연할 수 있지요. 그렇게 난 강하고 당당합니다. 인류란 이 지상에서 가장 고귀한 진리, 행복을 향해 나아가죠. 난 그 맨 앞에 있습니다.

우린 남들 앞에서 잘난 체하지만 현실은 무심코 흘러갈 뿐. 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일을 할 때면, 마음이 가벼워져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다오. 그런데 이 러시아에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엄마가 떠날 때까지만이라도 정원을 벌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세요.

피르스는 너무 오래 살아 이번에는 수리한다 해도 소용없을 겁니다. 이젠 선조들 곁으로 갈 때가 됐어요. 그렇지만 난 그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트렁크를 모자 상자 위에 올려 놓고 찌그러뜨린다.) 이렇게 끝나는 겁니다. 다 그런 거죠.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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