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솔뫼가 쓴 극장 이야기를 읽으면, 극장 - 영화관에 자주 가던 시절의 감정과 감각, 생각과 느낌이 떠오른다.
홍상수 감독 '극장전' 리뷰 http://cine21.com/news/view/?mag_id=30776 (유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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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방에서 발견한 노트 속 일기는 어느 해의 겨울과 그때 만났던 사람에 대해 적혀 있다. 그때는 아마도 겨울의 초입이었고 그 겨울의 어느 날 나는 한국 감독이 만든 그해 주목받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습관처럼 극장에 갔고 그 시간에 하는 영화를 본다. 그게 그 다큐멘터리였다. (중략) 영화는 3년 전 부산에서 일어난 어떤 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 P28
겨울의 초입, 사람들은 외투를 벗어 무릎을 덮은 채로 영화를 보고 있다. 나는 어깨까지 외투를 끌어올려 얼굴만 내민 채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는 눈이 펑펑 내렸고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오갔다. 눈을 맞지 말라고 했지. 나는 방에 누워 창에서 나는 물냄새를 맡으며 물을 끓였다. 차를 마시려고. - P34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다. 나는 영화에 대해 특별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감독의 긴장된 얼굴을, 그러니까 남이 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조금 재밌고 좋았다. 나는 조금 나쁜 사람인가? 아니 그냥 그런 게 좋은 거야. 누군가 긴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살짝 긴장이 되고 그런 기분은 좋거든. - P37
나의 입안에는 스웨터 보풀이 있다. 내가 그 보풀을 입에 넣은 데는 당신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국면이 있었으나......겨울날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은 온몸이 점점 각목처럼 뻣뻣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데 그것이 갑작스러워서 깜짝 놀랄 만한 것은 아니고 으레 있는 일 같은데 각목 같은 건 각목 같은 거지. 극장에 가는 것은 분명 영화를 보기 위해서지만 보풀을 입에 물고 삼키지 않고 내가 왜 극장 계단에 앉아 있느냐 하면 하고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려보면 아마도 그것은 나 자신을 멀리서 보며 오 그렇군이라고 할 수 있어서, 조용히 집중한 상태에서 그런 멍청한 행동을 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앉아 있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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