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에 발렌타인데이를 핑계 삼아 초콜릿을 사 먹었다. 마침 지금 읽는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작품집 중 김솔이 쓴 단편 '유럽식 독서법'에 벨기에의 초콜릿 공장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쓴 벨기에 초콜릿’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716613 (김여수) 출처:경기신문


* 계간 문학동네 2015 여름호 좌담에서 오혜진 평론가는 김솔의 이 작품을 읽고 "보편적 세계사를 상대화하려는 의지"를 주목한다고 밝혔다. 


벨기에와 프랑스의 국경 부근의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자들은, 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나와 같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나에겐 유일한 아시아 출신이라는 낙인이 하나 더 찍혀 있다. 나의 모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는 역사는 이곳 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높은 국민소득을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의 심장부답게 외국인들의 장기 체류에 관대하기 때문에 유럽의 도둑들에겐 천국과도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전해 듣고 나서, 우리 부부는 방콕에서 출발하는 항공기의 최종 목적지를 영국에서 벨기에로 바꾸었다.

자재 창고와 생산 라인을 오가면서 하루 생산량만큼의 재료들을 어깨에 메고 옮긴다. 잠시 땀을 식히면서 담배 한 대를 피운 다음 가마솥에 초콜릿 덩어리와 팜유와 설탕과 저질 탈지분유를 함께 넣고 주걱으로 저으면서 한 시간 가량 약한 불로 끓인다. 사장이 다가와서 성분과 배합 비율을 알 수 없는 첨가물을 집어넣고 지나가면 나는 다시 재료들을 반시간 동안 젓고 정육면체의 틀에 붓는다. 이렇게 해서 사장은 한덩어리의 고급 초콜릿 원료로부터 세 덩어리의 저급 초콜릿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부분의 생산공정이 사람의 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초콜릿도 당연히 벨기에산 수제 초콜릿으로 분류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상품이 아무런 포장 없이 아랍계 제과점으로 배달된다는 사실과, 특별한 추억을 담으려는 목적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소모된다는 사실만이 특이할 뿐이다. - 김솔, 유럽식 독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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