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옮긴 톨스토이의 '악마'는 펭귄클래식 '크로이체르 소나타'(이기주 역) 수록판이 출처이다.

Seated Demon, 1890 - Mikhail Vrubel - WikiArt.org


https://en.wikipedia.org/wiki/Mikhail_Vrubel

"내 말 좀 들어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예브게니가 입을 열었다."이보게, 바실리 니콜라예비치, 내가 총각이었을 때 지은 죄가 있다네……. 어쩌면 이미 얘기를 들었는지도 모르겠군…….""스테파시카 말씀이시죠?""그래, 그렇다네. 제발 부탁이네, 그녀를 우리 영지의 인부로 쓰지 말아주게. 알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불쾌한 일이네…….""그럼요, 알고 있습죠. 사무실 직원 바냐가 알아서 처리했는걸요."

그렇게 그 문제는 종결되었다. 예브게니는 그녀를 보지 않고 지냈던 지난 1년처럼 지금도 그렇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놓았다.

‘더군다나 바실리가 바냐에게 말을 하고 나서, 바냐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전하면, 그녀는 내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겠지.’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예브게니는 아무리 힘들다 해도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자 바실리에게 말했다는 게 뿌듯했다. ‘그래, 이 의혹과 이 수치심보다 모든 게 더 나은 일이야.’ 그는 그가 저지른 죄악을 회상하면서 머릿속으로 몸서리쳤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자신의 의지란 없고, 그를 움직이는 다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살아났지만, 오늘이 아니더라도 어찌 되든 내일, 혹은 모레는 결국 파멸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 파멸이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그렇게밖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농부 여편네와 붙어서 사랑하는 젊은 아내를 배신하는 것. 모든 점에서 이건 저지르고 나면 더는 살 수가 없는 무서운 파멸이 아니겠는가? 아니다, 조치를 취해야만 해, 그래야만 해. 하나님 맙소사!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정말로 나는 파멸하고 마는 건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치를 취할 방도가 없단 말인가?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그녀를 생각해서는 안 돼. 생각해서는 안 돼!’ 그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명했다. 바로 그 순간 그녀가 생각났고, 그녀가 눈앞에 떠올랐으며, 단풍나무 그늘이 눈앞에 그려졌다. -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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