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의 '제2의 성' 성 입문 편에서 남성의 "거짓 특권"에 관한 보부아르의 통찰을 읽고 톨스토이의 '악마'를 소환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잊지 못한다. 펭귄클래식판 톨스토이의 '악마'로부터 밑줄긋기를 하며 이 작품이 수록된 다른 책들도 올려둔다. * [톨스토이의 '악마' , 뒷이야기] http://www.sejongeconomy.kr/30242
Demons tortures a sinner - Rogier van der Weyden - WikiArt.org
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일하는 농부의 아내나 처녀들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생전에 다른 지주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는데, 자신의 영지에서 농부들의 아내와 정사를 벌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사실을 예브게니는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자신도 두 분과 똑같이 하리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하게 성적 욕구를 느끼고, 이런 시골 마을에서 자신의 건강이 나빠질 것을 상상하니 두려워진 그는, 농노제도도 없어진 마당에 이 마을에서 여자를 구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방탕의 늪에 빠지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만 관계를 가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는 더욱 안달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촌장이나 농부들, 목수들과 대화하다 보면 무의식중에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일단 여자 얘기가 나오면 마냥 그 얘기만 계속했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예브게니는 남편을 어째서 배신하는지 묻고 싶었다.
"뭐가 어떻게요?" 그녀는 되물었다.
그녀는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여자임에 틀림없었다."그러니까 왜 나를 만나러 오느냐는 걸 묻고 싶은 거지."
"어머!" 그녀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이도 아마 거기서 놀아날 텐데, 난들 어때요?" 그녀는 거리낌 없고 씩씩하게 굴었다.
그는 치료를 해주기 위해 한 여자의 몸에 손을 얹어야 하는 수도사가, 그녀를 범하고 싶은 유혹을 견디다 못해 다른 손을 난로에 얹어서 손가락을 태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바로 그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 손가락이라도 태울 테다. 그 편이 파멸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성냥에 불을 켜서 불꽃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자, 이래도 어디 한번 그녀를 생각해 봐.’ 그가 냉소를 뿌리며 자신에게 말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 그는 순간 검게 그을린 손가락을 움츠리고는, 성냥개비를 던져버리고서 자신을 소리 내어 비웃었다. -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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