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붕괴해가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양동이 기사」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경제적 능력이 결여된 사람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적 추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양동이 기사와 석탄상인 부인의 대립 구도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이 작품 전체에서 석탄상인의 역할을 해석해내기가 난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 중의 하나로 양동이 기사와 석탄상인을 작가 카프카의 도플갱어라고 간주해 보았다. 이중적인 도플갱어의 공유하는 속성과 상반된 속성을 통하여 도입부의 추위나 마지막의 빙산 지대 그리고 질병과 하늘을 나는 양동이의 상징성도 파악될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양동이 기사」는 글쓰기에 대한 카프카의 성찰을 다룬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물론 이러한 고찰은 이 작품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황승환사회적 갈등과 글쓰기에 대한 성찰 - 카프카의 「양동이 기사」 해석 시도(2016)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84137


One Minute Sculpture. Double Bucket, 2017 - Elina Brotherus - WikiArt.org





내가 타고 갈 것은 물론 정해졌으니, 그래서 나는 양동이 위로 올라탄다. 양동이를 탄 사람으로서, 가장 간단한 말의 머리 장식인 위쪽 손잡이를 움켜쥐고, 나는 힘들게 계단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러나 아래에 내려서니 내 양동이는 떠오른다, 보란 듯이 현란하게. 바닥에 넓죽 누워 있던 낙타들이 안내인의 지팡이 아래에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일어서듯, 너무도 멋지게 일어선다. 나는 균형을 잡으며 바쁘게 거의 얼어붙은 골목길을 가로지른다. 종종 나는 이층 높이까지 들어 올려지고, 결코 현관문까지 내려오지 않는다. 그리곤 석탄 상인네 둥근 천장의 지하실 앞에서 나는 이상스럽게 높이 떠 있다. 그 안쪽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는 상인이 작은 탁자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 편지를 쓰고 있다. 지나치게 달궈진 열기를 내보내기 위해 그는 문을 열어 놓았다.

"석탄 상인!"

나는 추위에 데어 애가 타는 분명치 못한 목소리로, 자욱한 연기구름을 헤치며 소리친다.

"제발, 석탄 상인이여, 내게 약간의 석탄을 주세요. 내 양동이는 내가 탈 수 있을 정도로 이미 이렇게 비어 있어요. 제발 부탁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돈은 빨리 드릴게요."

상인이 손을 귀에 갖다 댄다.

"내가 제대로 들었나?"

그는 난로 곁에 있는 의자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내를 어깨너머로 보며 묻는다.

"내가 제대로 들었지? 고객이야."

"난 전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요."

등이 기분 좋게 따뜻한 아내가 뜨개바늘 너머로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말한다. - 양동이 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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