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스나르의 서명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다니엘 바렌보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97XXXXXX1999
나는 예술과 삶에 든 이 자유를, 자체의 전개 법칙만을 따르는 그것들의 자유를 이해하기 시작했소. 리듬은 내면적 혼란의 동향을 따라가니, 심장이 지나치게 급속히 뛸 때 박동소리를 청진하는 건 무섭소. 지금, 2년간 내가 나 전체를 유폐시켜 놓았었던 이 악기로부터 탄생한 것은 희생의 노래는 더 이상 아니었소, 욕망의 노래도 아니었고, 아주 가까워진 기쁨의 노래도 아니었소. 그것은 증오, 나를 그리도 오랫동안 변질시켰고 억압했던 모든 것에 대한 증오였소.
비엔나에서 마지막 남은 화창한 가을 며칠 동안, 나는 경이스러워하며 내 몸을 다시 발견했소. 영혼을 가진 것으로부터 나를 치유시킨 내 몸을. 당신은 내게서 두려움과 회한과 양심의 가책만을 보았었소, 내 양심도 아니고, 내가 길잡이로 삼았던 다른 이들의 양심의 가책만을. 인체의 아름다움과 신비가 내게 얼마나 열렬한 숭배를 일으키는지, 인체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내어줄 때면, 인간의 젊음 한 조각이 내게 증여되는 성싶은지를,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거나 혹은 감히 말하지 못했소. 여보, 사는 것은 어렵소. 나는 도덕론을 워낙 많이 세워보아 또 다른, 모순적인 도덕론을 만들어내지는 않겠소.
다만 나는 정신착란에 이를 지경이 된 자신에 대한 부정보다는 죄가(이것이 아직 죄일진대) 차라리 더 좋소. 삶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든 것이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나 이제 체념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본능의 포로(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로 만든 것이오. 그리고 이 순응이 내게 행복은 아닐지라도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리라, 나는 바라오. 여보, 나는 당신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항상 믿어왔소, 그리고 그것은 모든 일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욱 귀한 일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