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nterrupted. Monument in remembrance of Etty Hillesum. By FaceMePLS from The Hague, The Netherlands - CC BY 2.0, 위키미디어커먼즈


[에티 힐레숨(1914-1943)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스물아홉에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1941년 3월, 나치 학살이 본격화되던 무렵부터 쓴 일기와 편지들이 있다. 학살자들에 대한 “증오를 거부”하고 고결한 인간성과 용기를 증언한다. 


제르맹은 에티의 삶과 태도를 존경해 그녀에 관한 책을 썼다. 힐레숨은 수용소의 잔혹한 체험을 겪으면서도 “나는 증오에 격렬히 맞서 싸우리라”라고 단호히 말할 만큼 사랑의 길을 강조한다. 제르맹은 힐레숨의 태도를 우리의 삶을 두려움과 경직된 방어 의식으로 초라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한다. 


힐레숨의 사랑이 제르맹이 비난하는 비겁한 ‘공모자’들의 태도와 다를 수 있는 것은 왜인가. 사랑에 대한 그녀의 요청이 거대한 체제 앞에서 좌절한 순응적 태도가 아니라 인간적 품위와 삶에 대한 강렬한 요청이기 때문이다. 


증오를 넘어선 사랑에 이르는 싸움이야말로, 수용소에 갇혀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 유일하게 가능했던, 치열한 투쟁이 아니었을까. 힐레숨이 개인적 차원의 증오는 가장 쉬운 반응이지만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기에는 오히려 너무 무력하다고 이해한 것은 객관적 현실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제르맹은 힐레숨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영성에 기초한 사랑은 신비롭지만 실질적인 힘을 지닐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영성적 사랑’은 악을 토대에서부터 뒤흔드는 방식이기에, 악을 넘어서는 ‘선’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선’이 악의 흔적을 따라 맞서 싸우는 반사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역량과 추구 속에서 악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한 ‘선’의 다른 이름은 제르맹이 깊은 공감을 보내는 베유의 사상처럼 세상의 폭력과 악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연민과 용서일 것이다.] 출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1778 실비 제르맹에게 있어서 악의 문제, 프랑스문화예술연구(ECFAF), 2022, vol.79, pp. 171-202 (32 pages), 유치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