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roov3 - Own work, CC BY-SA 3.0,위키미디어커먼즈 [Her epitaph, in French, reads, "Plaise à Celui qui Est peut-être de dilater le coeur de l'homme à la mesure de toute la vie". This has been translated as, "May it please the One who perchance is to expand the human heart to life's full measure" in her novel The Abyss.]





자신이 남에게 야기시킨 고통은 맨 나중에야 알게 되는 법이오. 게다가 당신은 고통을 숨겼소. 초기에 나는 당신이 그런대로 행복한가보다 추측했소. 당신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말하자면 당신을 가리려고 노력했소. 당신의 아름다움을 파묻어버리는 어둡고 두터운 옷차림을 했지요. 왜냐하면 조금만 공들인 단장도 마치 사랑의 제안이라도 되듯 나를 놀라게 했기 때문이오 (당신은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소).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게 몹시 애틋한 애정을 품었소. 잠시만 당신이 곁에 없어도 나는 온종일 기분이 울적했소, 그러나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괴로웠는지, 단지 내가 혼자된 것이 두려웠는지는 아무도 모를 노릇이었소. 나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몰랐소.

우리 둘은 신앙 실천에 열렬히 빠져들었는데, 그러한 신앙은 더이상 우리의 진정한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소. 모든 것이 결핍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데, 그러는 그 순간 그들에겐 하나님도 결핍되오. 자주 우리는 사람들이 여행중 찾아가는 어둠침침하고 환대적인 해묵은 교회당들을 오래 둘러보곤 했소. 우리는 그런 곳에서 기도하는 습관까지 붙였소. 우리는 저녁에 몸을 꼭 붙이고 적어도 공통적인 열정에 의해 결합되어 집으로 돌아왔소. 우리는 거리에 남아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려고 핑계를 만들곤 했소. 다른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그 삶을 직접 사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나 쉬워 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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