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철학이나 종교 담론과 다르고, 소설가의 일이 ‘악’에 대한 질문에 논리적인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제르맹 역시, “작품의 인물은 실험적 자아”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하면서, 소설 속 인물은 상상의 인물들이지만 작가가 다루는 것은 추상적 대상으로서 인간이 아닌, 현실의 인간을 성찰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따라서 제르맹의 핵심적인 관심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어둠’을 탐사해 인간의 실존을 다루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악은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거짓과 광기, 이기심과 무정함, 집착과 근친상간,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자행하는, 극단적인 수준의 ‘악’이 그려진다.
근원적인 차원에서 정면으로 인간의 심연을 응시하고, 인간성을 성찰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르맹이 ‘악’을 그리는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를 탐색하는 일이다.
인간의 어둠을 성찰함으로써 빛을 발견하고 모색하는 것, 인간의 인간다움을 실현할 길을 묻는 것이다.]
출처: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811778 실비 제르맹에게 있어서 악의 문제, 프랑스문화예술연구(ECFAF), 2022, vol.79, pp. 171-202 (32 pages), 유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