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트리 스피박이 영역한 자크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최근판에는 스피박의 새로운 서문과 함께 주디스 버틀러의 발문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스피박은 ‘옮긴이 서문‘에서 데리다의 해체 철학이 등장하게 된 지적 배경과 데리다의 초기 저작에 영향을 준 철학적 논쟁들을 설명한다. 또한 소쉬르, 롤랑 바르트,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라캉의 정신분석, 미셸 푸코의 담론분석은 물론, 니체의 진리 비판, 프로이트의 기억과 무의식 이론,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 문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윤리학 재고 등 19~20세기의 핵심적인 비평적 개입들을 개괄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스피박의 글은 ‘옮긴이 서문‘이라는 글 형식에서 흔히 보거나 기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것으로, 이후 데리다의 사상에 관해 발표된 철학적 논평들에 필적한다.
서양 철학 담론에서 적절함/부적절함의 이분법을 해체한 데리다의 작업은, 스피박에게 특히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의 개념들을 수정하는 대목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스피박이 생각하는 해체적 독서 실천의 ‘정치적‘ 가치는,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식의 마르크스주의나 민족해방운동 혹은 서구 페미니즘의 일반적인 주장들을 경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스피박은 해체론을 정치적 재현의 맥락에서 재가공함으로써, 보편적인 정치투쟁의 언어가 권리를 박탈당한 집단(피식민지인, 여성, 노동자)의 삶에 잠재적으로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스피박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데리다가 각각의 사람들이 처한 독특한 상황과 물질적 조건들을 읽어내는 좀 더 유연하고 책임감 있는 접근법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이 접근법은 "급진적인 비판이 지닌 위험성, 즉 동화를 통해 타자를 전유할 위험을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스피박이 데리다의 서양 철학 해체에서 발견한 이러한 책임감 있는 접근법은 데리다의 후기 저작에서 드러나는 좀 더 총체적인 관심사, 즉 윤리학을 타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재고하는 문제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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