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연인에게 쓴 편지글이다. 김일엽이 출가한 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어떤 기회에 연인이었던 남성이 책과 먹을 것 등 여러 가지를 챙겨 보낸다. 이에 그녀는 애틋한 편지를 쓴다. 실제 부쳤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불교계에서는 알려진 권위자로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그녀가 가장 사랑한 남성이었던 것 같다. 옛날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수도를 하기 위해 그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떠났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이면서도 책더미를 바라보니 싱거운 웃음이 빙긋이 새어나와 웃고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모릅니다.

당신을 잘 안다는 어느 여승이 당신이 보내더라고 약 한 보따리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거기에 "영양을 더 도우며 약을 먹어야 한다"고 보약 위에 우유까지 열 통을 넣어 보낸 것입니다.

감기 들 때나 기침 날 때마다 먹으라고 일찍이 맛본 적이 없는 캐러멜 열 갑이었습니다.갑을 뜯을 때부터 그 물건이 따로이 애틋하고 정다운 듯이 느껴지며, 가슴에서는 무엇이 스르르 일어나 온몸에 감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물건을 보내주신 것이 정의 표현이라고 오인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은 그 옛날과 같이 오래도록 울기만 하고 있을 어리석음은 좀 면하게 된 여승女僧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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