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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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마지막날인 오늘 이 책을 읽었다. 이 사건 가해자가 옥중이혼했다는 소식을 최근 접했다. 남의 사생활에 관심 없지만 이 사람은 경우가 달라서 이 책이 생각났다. 저자가 뉴스에 나와 처음으로 이야기하던 때가 기억난다. 


정규직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한 여성으로서 저자는 정치 쪽으로 취업한 바람에 대권주자였던 유명정치인 도지사의 수행비서가 되어 시도 때도 없이 별별 일을 다한다. 그러다가 결국 위험에 빠지고 이 사건이 터진다. 


학자금 대출로 계속 공부한 학력(학사 문학, 석사 예술학, 박사 행정학 전공)은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 왜 성폭행을 제대로 뿌리치지 못 했느냐는 질문의 근거로 이용되고, 결혼과 이혼 이력은 더욱 나쁘게 작용한다. 


성폭행 피해자에게 특정한 스테레오타입이 왜 필요한가? 성폭력, 특히 위계에 의한 폭력은 조직 안의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1심에서 피고인이 무죄가 된 후, 저자가 패닉에 빠져 결국 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은 읽으면서 그 괴로움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래도 최종심의 결론을 아는 상태에서 읽었기에 마음의 고통이 덜 했다. 


재판에서 그녀의 편에서 증언해준, 피고인과 오래 일했고 피고인이 신뢰했던 어느 남성 증인은, 피고인과 친한데 왜 반대편 증인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군대 경험을 말하면서 상급자에게 폭력을 당한 하급자는 일단 보호하고 권위 있는 기관에서 정식으로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본인의 소신을 밝힌다. 


사건 발생 후 얼굴을 가리느라 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이 무척 답답했다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다들 마스크 쓰는 게 일상사가 되었으니 김지은 씨만큼은 외출이 더 편해졌기를 바란다.


내일은 5월1일 메이데이 노동절이다. 모든 형태의 노동을 제공하는 지금 여기 만국의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노동을 할 수 있기를, 그리고 노동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자에겐 노동의 기회가, 엄연히 노동하고 있는데도 사회적인 대우가 박탈된 자에겐 적정한 이름과 대가가 제공되길 원한다. 

학대받는 아이의 이름이 '김지은'인 영화 '미쓰백' https://youtu.be/b8O7HmXjYcg

"왜 네 번이나 당해?" 나는 이것을 안희정에게 묻고 싶다.

월급을 받아 학자금을 갚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일이 끊기면 바로 생계에 지장이 왔기에 바로 관두지 못했다.

"조배죽". 안희정 조직의 회식 자리에서 고위 참모가 종종 하던 건배사다. "조직을 배신하면 죽는다."

안희정의 성폭력이 일어나기 전 동료가 나를 성희롱하고 성추행한 일이 있었다. 이를 어렵게 조직에 말했을 때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했다.

나는 이혼했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6만 원 남짓의 돈으로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월세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행복한 삶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이혼녀‘가 되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내게는 원치 않는 ‘이혼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내가 이혼하고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듣자마자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버지와 대화할 수 없었다. 너무나 죄스러웠다.

이혼녀이자 비정규직으로서, 나는 일에 매진했다. 여성이기 이전에 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가장이다. 실력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기에 나는 더욱 더 일에 매달렸다.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가도 될까요?" "아끼는 동생의 할머니 장례식장에 가도 될까요?" "카페에 가도 되나요?""친구를 만나도 되나요?" "미용실에 가도 될까요?" "식당에 가도 되나요?" 소소한 일도 변호사에게 여쭤봤다. 혹시라도 재판에 문제가 될까 봐서였다.

햇빛을 보지 않고 통조림만으로 하루 한끼니만 채우다 영양실조 진단을 받기도 했다.

‘미쓰백‘을 보았다. 어린 등장인물의 이름이 ‘김지은‘인데 아동폭력을 당하던 아이를 향해 김지은! 김지은! 하고 부르는 게 마치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만약 당시 정상적인 노동자로서의 삶을 보장해달라고 더 강하게 요구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일을 외면하고 현실에서 도망치면 피해자다운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이 절실했던 내가 당장 관두고 다른 일을 찾았다면 피해자다운가?

변호인단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던 괴로움을 정화시켜주는 숲이 되어주었다. 마치 비자나무가 촘촘한 숲을 걷는 것 같았다.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스스로의 에너지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변호인단은 내게 지혜로운 언니들 같았다. 고마운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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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4-30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힘들었을지. ;;

서곡 2022-04-30 23:22   좋아요 1 | URL
책으로 자세히 읽으니 정말 고구마더군요 사모님 빵 심부름까지 하고 근데 그 비용도 자비로 지출해야 했다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 ㄷㄷㄷ

singri 2022-04-30 23:31   좋아요 1 | URL
구구절절 사연이 안봐도 떠오르는데 이미 그녀로서는 죽고싶을정도로 대단한 용기를 냈을테지만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살아갈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자신 스스로 단단한 미쓰백이 되길도 바랍니다. 수많은 김지은들도 마찬가지로;;;

서곡 2022-04-30 23:32   좋아요 1 | URL
자신 스스로 단단한 미쓰백이 되길 바란다는 말 좋습니다~~~~

singri 2022-04-30 23:33   좋아요 1 | URL
이영화때문에 한지민팬입니다ㅎ

서곡 2022-04-30 23:39   좋아요 1 | URL
이 영화 봤는데 아이 이름이 김지은이라는 건 인지 못 하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