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요코가 갖고 있는 선악과 시비의 분별은 학문이나 경험으로부터 거의 독립해 있다. 그저 상대를 향해 직감적으로 타오를 뿐이다. 그러므로 상대는 경우에 따라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요코의 반응이 강하고 격렬한 것은 가슴속에서 순수한 덩어리가 한꺼번에 다량으로 튀어나온다는 의미지, 가시나 독이나 부식제 같은 것을 내뿜거나 끼얹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설사 아무리 격하게 화를 낼 때도 나는 지요코가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경우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드물게는 고상한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마저 들었을 정도다. 나는 세상 앞에 홀로 서서 지요코야말로 모든 여자 중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여자라고 변호해주고 싶을 정도다. - P243
내가 만약 지요코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아내의 눈에서 나오는 강렬한 빛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 빛이 꼭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정의 빛도, 사랑의 빛도, 혹은 깊은 사모의 빛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 그 빛 때문에 꼼짝하지 못할 게 뻔하다. - P244
만약 순수한 지요코의 영향이 나의 어딘가에 나타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설명해도 그녀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데서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발현될 뿐일 것이다. 만일 지요코의 눈에 들어와도 그녀는 그것을 포마드를 발라 굳힌 내 머리나 순백색 비단 버선으로 감싼 내 발보다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 P245
나는 또 감정이라는 자신의 무게로 인해 넘어질 것 같은 지요코를, 운명의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인이라며 깊이 동정한다. 아니, 때에 따라서는 지요코 때문에 전율한다. - P246
나는 자신의 모순을 충분히 연구했다. 그리고 지요코에 대한 자만심을 끝까지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없게 하기 위해 다른 사상이나 감정이 내 마음을 빼앗으러 어수선하게 교대로 찾아오는 번거로움에 시달렸던 것이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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