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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평점 :
21세기에는 글쓰기 능력만 탁월하게 가지고 있어도 먹고 사는 시대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산업이 발전하고 수익을 낼 수 있어 글쓰기는 생존과도 관련이 깊다.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의 글쓰기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듯 하다. 이에 인지학 및 언어학의 대가인 스피븐 핑거 교수는 글쓰기의 정석이 될만한 글쓰기 기본서를 집필했다.
부제가 '영어 글쓰기의 정석'이라 되어 있지만 의사소통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말 글쓰기에도 충분히 공통적인 부분이 있어 좋은 참고서가 된다. 영어권에서는 20세기 초반에 스크렁크와 화이트가 쓴 책을 글쓰기의 지침서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언어의 변화를 반영하는데 한계점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연락을 취한다'라는 표현에 오늘날에는 'contact'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그 시절에는 구체적인 연락을 중심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논리가 강했다고 한다. get in touch with(연락을 취하다), look up(방문하다), phone(전화하다), find(찾아보다), meet(만나다)처럼 구분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시대의 흐름은 경제적인 언어 사용을 지향한다.
예전의 글쓰기 지침서는 언어의 경직성을 강조했다. 정해진 문법 내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담았다. 하지만 필자는 21세기에는 무조건 강요하는 글쓰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제목처럼 글쓰기의 감각(sense)을 기르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상식(sense) 선에서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지침을 제공한다. The sense of style에서 sense는 감각이면서 상식을 말한다.
독자는 본문을 통해 픽션보다는 논픽션에서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장르에 적합한 글쓰기를 알려준다. 물론 그렇다고 픽션 등을 배제하는 글쓰기를 강조하지는 않는다. 논픽션의 명료함과 일관성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픽션 등의 글쓰기도 잘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지침을 제공한다. 메시지로 인한 혼선을 줄이고 신뢰를 획득할 수 있으면서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할 수 있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스티븐 핑거 교수의 견해에 특히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하고 오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동경해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들이 핵심이 없거나 또는 핵심을 흐리기 위해서 횡설수설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 명료하게 핵심만 전달하면 될 것을 다른 것들을 붙여대고, 때로는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돌아오기도 한다.
필자는 글쓰기에서 이와 비슷한 '지식의 저주'를 언급한다. 지식의 저주는 내가 알고 있는 어려운 내용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즉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이런 글은 글쓴이가 고의적으로 선택한 결과라고 했다.
관료들이나 기업관리자들은 뒤탈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횡설수설을 고집한다고 말한다. 기술자들은 학창 시절에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이나 데이트를 거절한 여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일부러 어렵게 쓴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를 골탕 먹이기 위해 글을 어렵게 쓴다는 것인데, 필자는 이 의견에 정면 반박한다. 경험상 절대 그런 의도가 없음에도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식의 저주가 훌륭한 사람들이 나쁜 글을 쓰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용어와 지식을 독자도 알고 있으리라는 가정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식의 저주를 거의 부패, 질병 등에 맞먹는 악으로까지 치부한다.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항상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관련 지식을 처음 배웠을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럴 때는 전문 용어나 약어, 어려운 단어를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어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새로운 분야를 배우려고 할 때 '지식의 저주'에 걸린 책을 많이 접한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는 입문서를 위주로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간단한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능력은 가장 훌륭한 고도의 기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 컬처블룸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감사하게 읽고 주관적인 의견을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