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챕터는 겐야의 이야기이다.
겐야는 자신이 살던 곳 근처에 있던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으나 대기업에서 온 유능한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해 그때의 트라우마로 번번한 직장 없이 방에 틀어박혀 살고 있었다. 그러나 10년 전 같은 대학에서 합기도 동아리를 하던 아오코의 제안으로 아오코, 가야노, 다쿠마와 같이 예전에 다니던 도장으로 운동을 가기로 한다. 그곳에서 가야노가 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재활운동으로 도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매주 일요일마다 그 도장에서 운동을 하게 된다. 그건 1년 반동안 방에 틀어박혀 살던 겐야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것 빼고는 딱히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쿠마에게 어렵사리 자신의 사정을 늘어놓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서 상담을 받는 일을 말해주며 자신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사람들과 말을 섞기 싫어 지켜만보던 도장 접수처 옆 수조에 있던 문어를 직원의 권유로 키우게 되면서 자신의 방에서 새로운 ‘바다유리‘를 들이게 된다.

제 방은 가까스로 손에 남은 초콜릿 한 조각이자, 존재가 허락되는 마지막 장소였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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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코는 조기출산한 후, 아이를 떠나보내고 남편과도 이혼한 상태였다.
본가에 들어가 살고 있었지만 부모님과의 마찰 때문에 자취하면서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학부모의 클레임 때문에 원장에게서 한마디 듣게된다. 그건 엄연히 학부모의 도가 넘는 사생활 간섭이었지만 원장은 학원의 이미지를 위해 제대로 된 파악보다는 그저 아오코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이래저래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던 아오코는 오랜 친구 가야노를 만난다. 이때 가야노는 자신이 유방암을 걸렸다는 사실을 아오코에게 말하고 딸 앞에서 보이기 싫었던 눈물을 보인다.

아오코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 안에 영원히 함께 존재한다. 사랑을 주며 살아갈 수 있으리만치 분명한 형태로.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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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6. 토

2인조 카빈 연쇄 강도 사건

처음 읽었을 때에는 도대체 이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맞을까 기대를 했다면 후반에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꼈다. 초반에는 2인조 카빈 연쇄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이 사건의 용의자인 문도석과 이종대는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어 출소 후에는 그 인연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데 전과자에 딱히 배운 것은 없으니 둘이서 다시 강도짓을 시작한다.
초반에는 가벼운 수준의 강도짓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많아져 점점 대담해지고 카빈 소총까지 소유하며 범행을 저지른다. 그러나 결국 경찰에게 꼬리를 밟혀 점점 수사망이 좁혀져오니 문도석은 자신의 아들과 본인 모두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종대는 같이 자살하자는 문도석의 제안을 거절하고 인천의 자신의 집으로 간다. 문도석은 결국 아들을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을 한다.
이종대는 자신의 집으로 가나 그 집으로 경찰이 오자 자신의 아내, 아들 둘을 인질로 삼는다. 약 17시간의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이종대는 대치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자수한다. 이때 카빈 연쇄 강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것이다.
결국 이종대도 자신의 아내와 아들 둘을 살해한 후 본인도 자살한다. 후에 이 사건은 언론에서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를 쓰며 약간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기사가 나오게 된다. 아이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말이다.

맨 첫 줄에서도 썼듯이 과연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결말은 무엇일까 하며 사건 자체에 집중했다면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는 가족들의 ‘동반자살‘에 대해 나오며 약간 주제가 반전되는 느낌을 준다.
약간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분노도 조금 느꼈는데 안그래도 이 둘이 한 범행 자체가 유족들에게는 큰 상처이며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러놓고 마지막에는 세상 제일 비겁한 방법으로 회피한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
세상이 비겁하다고, 자신들이 가장이라고 가족들의 목숨이 본인의 것인 것 마냥 행동한 게 너무 화가 났다. 게다가 그걸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며 결정권이 없던 가족들이 마치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표현한 것도 소름이었다.
하지만 더 소름이었던 건 나도 예전에 그런 비슷한 사건을 뉴스에서 볼 때 그들의 표현에 말려 그렇게 느꼈던 기억이 나 정말 짜증나고 내가 잘못되었구나 다시 깨달았다. 보통 ‘동반자살‘은 9세 이하의 자녀와 한다는데 딱 보기에도 부모에게 저항하기 힘든 나이이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정말 이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러한 ‘동반자살‘은 동반자살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새겨야겠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 동반자살이 아니다. (…)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부른다. 이 이름이 ()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만으로도 이미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행동뿐이다.
- 울산지방법원 2020. 5. 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 [살인]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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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22. 화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
이 이야기는 39년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려 했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원섭 씨는 강원도 춘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2년,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해 파출소장의 딸이었던 윤소미 양(가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현장에서는 남성의 체모 3개와 하늘색 연필, 검은색 머리빗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체모의 DNA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마을에서 의심되는 용의자들의 체모를 모아 육안으로 비교하는 다소 엽기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연히 제대로 진전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며칠뒤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정원섭 씨가 결국 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당시 왕국만화방에서 일하던 미성년자 여자 2명이 만화방의 주인이었던 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하였고,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색 머리빗 또한 정 씨가 사용했었다고 진술을 하였다. 또한 같은 마을에 살던 주민이 당시 아이를 낳은지 얼마 안된 정 씨의 부인을 도와주기 위해 빨래를 하다가 옷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또 다른 물품이었던 하늘색 연필이 정 씨의 아들 정재호 씨의 연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증언들과 정 씨 본인의 자백으로 그는 이 사건의 범인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는데, 당시 했던 자백은 경찰의 고문과 협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결백을 많은 사람들은 외면했지만, 딱 한 사람 이범렬 변호사만이 그를 위해 당시 사건을 조작한 증거를 가져가 재판을 했지만 그의 결백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정 씨는 교도소를 나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악착같이 버텨 198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석방된다. 출소한 이후에도 힘든 생활은 나날이 이어져갔지만 자신을 믿어주었던 이 변호사를 자주 찾아가고는 했는데, 1996년 그는 이 변호사로부터 한 쪽지를 받게 된다. 그 쪽지는 1972년 당시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이었다. 복사기가 흔한 시절이 아니라 손수 필사한 것을 준 것이었다. 그러고 얼마 있지 않아 이 변호사는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다. 정 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재심을 도와줄 변호사를 찾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1999년, 고 이범렬 변호사를 존경하던 후배 변호사들이 그를 도와 재심 신청을 하지만 또 기각당한다. 이때 재심을 신청하기 위해 조사하던 중 1972년 당시 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던 두 소녀 모두 경찰들에게 협박당해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를 모아 재심을 신청했지만 역시나 기각당했다. 그러나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서 정리 위원회‘에 요청해 재심 신청에 성공해 2008년 11월에는 춘천지방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2011년 대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받는다. 39년만에 정 씨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 씨와 가족들이 평탄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형사지원금 9억 6000만원은 그동안의 빚을 갚는데에 써버려 정 씨 가족들에게 돌아간 돈을 얼마 없었고, 후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갑자기 줄어든 손해배상 소멸시효 때문에 그마저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얼마 뒤, 정원섭 씨는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과 합병증으로 2021년 3월 28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챕터를 읽는 내내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특히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나잇대라 그러신지 만약 이게 우리 가족이었다면, 우리 아버지였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열정과 중간에 재심이 기각되었을 때에도 오히려 변호사들을 위로해주던 정 씨의 마음을 감히 내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그의 그런 태도는 배우려고 해도 배울 수 있을까. 그의 포기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고자 하는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만 같다. 그렇게 열심히 했음에도 결국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 같아 정말 안타깝고 마지막 구절을 읽고서는 솔직히 눈물도 조금 났다. 정말 그냥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중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마냥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일, 아니 당장 오늘 우리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런 사실도 너무 무섭고 저 당시에는 경찰권력이 저런 고문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는 게 언제 들어도 놀랍다. 박정희 정권 때에는 눈부신 성장도 있지만 그와 비례하는 어두운 면도 참 많다고 느껴진다.

고문 없는,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때 나를 경찰들이)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팼지. 무지무지하게 팼어, 똥이 나오도록.
-정원섭 씨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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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1. 19. 토
오소리 작전

이 챕터는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의 특수요원들이 서울에 침입했던 1.21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특수비밀부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기존에 훈련을 했었던 군인들이 아닌 가난하지만 각자 특기가 있었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해 이 부대를 만들었고 강도 높고 비인간적인 훈련을 지속했다. 그들은 북한에 침입해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보장된 일자리를 받는다는 희망으로 그 지옥같은 훈련을 버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독트린의 발표로 이 작전에서 관심도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그들은 북한에 침입해보지도 못하고 처음 약속받았던 특별대우는 커녕 강도 높은 훈련과 부대병들의 감시 속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1971년 8월 어느날, 사소한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울분이 터지게 되고 그들은 탈출 작전을 시작한다. 실미도를 벗어나 인천에 도착해 버스를 타다가 교전이 시작되어 오소리들은 물론이고 경찰, 민간인들까지 사망한다. 이 교전 끝에 생존한 4명은 국회의 진상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였고(물론 이에는 군 관계자의 회유가 있었다) 그 뒤에 그들은 군사재판에서 모든 것을 성실히 답해주지만 결국 사형을 선고받고 유언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며 처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실미도에 있었던 31명의 오소리들의 진실이 묻히나 싶더니 2002년에 올린 가스통 시위**로 인해 노무현 정부 때 실미도 사건의 진상을 밝혔고 그제서야 모든게 밝혀진 것이다. 31명의 오소리들의 명단이 공개됐고 자신의 자식, 형제가 죽은 걸 그때가 되어서야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마지막 생존해있던 4명의 유해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다 달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실미도 사건에 대해서는 영화나 tv프로그램에서 언뜻언뜻 들었기에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그때의 사건을 생생하게 듣다니 당사자들의 억울함이 느껴지면서도 유족들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다. 항상 이런 부조리한 일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가진 것 없는 자들이며 언제나 우리를 위해 일하겠다던 국가는 이럴 때에는 먼저 우리의 적이 되고는 한다. 당연히 세상이 공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정치쪽으로 간다면 두 말 할것도 없지만 언제나 진실은 감춰지기 마련이다. 이럴 때마다 항상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이를 잊지 말고 역사를 되풀이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잊지 않는 것만으로 이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잊지 않아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행동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힘이 있을까? 이런 물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안타까움 뒤에 이러한 물음들이 가끔은 괴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쪼록 세상에는 억울한 일들이 매년 적어졌으면 한다.

피해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첫걸음은 언제나 ‘진실‘ 찾기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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