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3. 24. 금

불안을 현명하게 다스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글쓴이는 첫번째로 불안을 분류하라고 제안한다. 2가지로 분류하는데, ˝내가 결과를 확실히 바꿀 수 있는 걱정˝과 그럴 수 없는 걱정으로 분류한다. 만약 전자라면 걱정 자체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끌어들이라고 한다. 만약 시험에 떨어질까봐 걱정이면 과목들의 시험 성적을 봐서 합격선의 과목의 공부 시간을 줄이고, 부족한 과목은 더 공부한다. 등으로 목표를 잘 살펴보고 자신이 맞게 가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걱정이 후자라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걱정이기 때문에 뇌에서 지운다. 해결할 수도 없는 걱정을 끌어안고 불안해 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고 몸고 마음이 힘들 뿐이다.

두번째로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대기업을 다니고,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높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뚜렷한 목표˝ 를 세워서 자신만의 인생을 묵묵히 걸어간다. 설령 속도가 느리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목표가 없거나 방황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기 쉽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도록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해결방법들이 어찌보면 당연하고 나도 할 수 있을 법한 소리로 들린다. 솔직히 내가 그랬다. 근데 머리로 알고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처음에 이 책을 사고 나서 나에게 엄청나고 멋진 해결방법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반에 읽고 나서는 뭐야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솔직히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기에 내가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의식해서 조금이라도 해보려 했는데 첫번째 방법에서 2가지 분류법은 조금 도움이 됐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걱정이라면 과감하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지우는 것이다. 문제점이라면 지금 당장 해결하기 싫어서 해결할 수 없다고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저 방법은 누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라는 건 언제 들어도 멋진 말이지만 참... 생계와 자신의 목표의 간극을 적절히 채운 목표를 세우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퍼센트,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퍼센트,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사소한 것에 대한 걱정이 22 퍼센트,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대한 걱정이 4퍼센트이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걱정은 고작 4퍼센트뿐이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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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 0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31 21:03   좋아요 1 | URL
히히 그럼유 근데 이거 좋아요 어케 누르냥

지닝 2023-03-31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 아래 ‘좋아요’ 누르니까 된당! 근데 대댓글은 어떻게 다니...? 전에는 됐던 거 같은데 어렵네...?ㅋㅋㅋㅋ

2023-03-31 22:47   좋아요 0 | URL
미친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구나... 댓글을 잘 안 이용해서 그새 까먹었나봐

지닝 2023-03-31 22:58   좋아요 1 | URL
ㅋㅋㅋ우리 벌써 느려지면 안 되는디...ㅋㅋ 우앙 나 대댓글 달 수 있다ㅎㅅㅎ
 

2023. 03. 17. 금

예전에 친구와 갈등이 생겨서 복잡한 마음에 샀던 책이었다.
근데 그래놓고 하나도 읽지 않아 아까워서 이 기회에 읽어보려고 한다.(난 불안한 마음이 생기면 이런 종류의 책을 사고는 한다...)

chapter1. 불안한 마음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인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해하고는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드 보통은 불안 요소로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라고 꼽았다. 저자는 능력주의에 가장 공감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능력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현대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한다는 불안감, 높은 지위를 얻지 못했을 때 느끼는 자책감 등이 우리를 사회의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다고 얘기한다. 게다가 요즘같이 sns가 발달해 나보다 높은 지위의 사람을 쉽게 마주할 수 있으니 비교대상이 많아진 것고 한 몫 할 것이다. 이런 불안이 지나칠 정도로 많아지면 불안 장애라고 하는데 성인 4명 중 1명은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불안이 없었자면 천적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없어 아마 인간은 멸종했을 것이다. 게다가 적당한 불안은 동기를 부여하고 집중력을 높여줘서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불안을 때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안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으면 자신 뿐만 아니라 소중한 시간도 갉아먹어서 현명하게 불안을 대처해야 한다. 1

19세기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는 "인생이란 불안이라는열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서,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이르는 실존이다"라고 했다. - P25

도대체 취업이 되기는 하는 걸까? 친구들은 하나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노량진으로 떠나가고, 아는 이 하나 없는 도서관에 섬처럼 떠 있을때. 편의점 앞에서 갈등하며 얇은지갑을 만지작거리는데 ‘딩동‘ 하고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 ‘생활비 입금했어. 돈 걱정 말고, 끼니 꼭 챙겨 먹어!‘라는 고향의 노모가 보낸 문자는 우리를 한층 더 불안하게 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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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3. 03. 금

조희팔 의료기 역렌탈 사기 사건 2
투자자가 늘어나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각 투자자들에게 줄 배당금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투자자들에게 줬던 배당금은 새로운 투자자가 맡긴 돈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들에게 돈을 주지 못하는 날을 정했다.
그리고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돈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꾀한다. CH마케팅 기법인데, 이름은 그럴싸하지만 그냥 사기다. 매일 투자자들에게 입금해주던 배당금이 통장 대신 별도의 가상계좌에 입금되고 그 내역을 문자로 보내주는 것이다.
만약 출금하고 싶은 사람은 신청서를 써야한다. 한마지로 실제 돈을 입금하지는 않고 지출을 줄이는 사기일 뿐이다.
게다가 10월부터는 수익률이 낮아진다며 사람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다신이 한평생 일해 얻은 퇴직금, 집과 논밭까지 담보로 대출을 받아 전부 투자했다.

2008년 10월 31일, 조희팔의 회사로 경찰이 들이닥치지만 이미 경찰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모든 자료들을 소거한 후에 도망쳤다. 그리고 한달후, 조희팔은 중국으로 밀항했다. 2011년 조희팔의 사망 소식이 들리기까지 그는 중국에서 나름 여유로운 생활을 했으며 이가 가능했던 건 검찰과 경찰들이 그들의 돈에 넘어가 그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 그가 사망했다며 그 증거로 나온 것은 화장증, 사망증명서, 조희팔의 장례식 동영상이었는데 그 증거들이 다 하나같이 수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희팔이 위장으로 사망을 한 게 아니냐했지만 경찰은 조희팔이 사망한 것이 맞다고 발표해버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의 목격담이 들리기도 했고 그의 조카 유 씨의 전화통화에서 그가 살아있다는 뉘앙스로 말한 것이 밝혀져 그의 사망은 더 의심스러워져만 갔다.

조희팔에게 로비를 받았던 검찰과 경찰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그를 찾기로 한다. 그 중에는 가치 있는 증언들을 모아 그것을 취재하던 기자가 제보해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까지 성공하지만 결국엔 그는 조희팔과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그러던 2015년 10월 10일, 중국 장쑤성의 고급 아파트에서 은신하고 있던 강태용이 공안에게 붙잡히고 열흘 후, 조희팔의 조카 유 씨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수사가 갑자기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게다가 유씨가 사망한 이틀 후에는 대구경찰청으로 배상혁이 직접 자수를 하겠다며 전화를 했고 약속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자 직접 간 경찰에게 배상혁은 검거된다. 2주가 채 안되는 시간에 주요 인물 3명이 검거된 것에 무엇인가 뒷배경이 있지 않을까 하여 조희팔이 생존해있다는 가정하에 재수사를 시작했지만 그 끝은 허무하게도 조희팔이 사망한 것을 최종판단하고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조희팔에게 유리하게 흘러갔지만, 피해자들만큼은 십몇년이 지나는 세월 동안 고통에 살아야 했을 것이다.

"왜 저런 것에 속지? 욕심부리다 당한 거 아니야?"

사기 사건을 접하면 흔히 드는 생각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돈에 대한 욕심, 한탕을 노리다 당한 게 아닐까. 하지만 피해자들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듣고 나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죄스러워졌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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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25. 토

조희팔 의료기 역렌탈 사기 사건 1/2

충남 태안에서 양식업을 하던 박씨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씨가 연락을 한다. 한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부탁은 ‘왕 회장‘이라는 사업가가 부도를 내고 쫓기고 있어 중국으로 밀항하는 걸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엄연한 불법이었기 때문에 박씨는 거절했지만 장씨는 이 일을 도와준다면 큰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박씨는 한번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아무래도 찜찜했던 박씨는 결국 경찰에 신고를 하고 해경과의 공조가 시작되었다.
2번의 밀항 시도와 해경의 체포가 실패하고 3번째가 되었을 때 굉장히 불안해하던 왕 씨는 갑자기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주고 결국 밀항에 성공한다. 뒤늦게 찾아온 해경은 사업가 ‘왕 씨‘의 진짜 정체를 알게되는데... 바로 그는 대한민국에서 희대의 사기를 쳤던 ‘조희팔‘ 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지내던 조희팔은 형의 소개로 다단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당시 ‘다단계 사관학교‘라고 불렸던 SMK를 다니다 회사를 차리고는 본격적으로 사기를 치기 시작한다. 조희팔은 비록 초졸이었지만 적재적소에 인력을 쓰는 능력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지방 명문 국립대를 졸업한 강태용(금고지기, 로비스트, 실질적 2인자)와 배상혁(강태용의 처남, 브레인)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희대의 사기극을 펼쳤다. 바로 안마기와 찜질기 같은 의료기기를 구입하면 그걸 회사가 알아서 설치와 관리를 해주고 그 수입금을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사람들도 당연히 믿지 않았지만, 정말 통장에 매일 똑같은 시간에 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너도나도 시작하고 심지어 주변 지인들에게도 권유하며 많은 사람들이 투자하기 시작했고, 조희팔은 엄청난 투자금을 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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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02. 24. 금

국군 포로 장무환 구출 작전 2

장무환 씨를 발견했지만, 그를 고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참 험난한 일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포로로 북한으로 억울하게 끌려간 것이었지만, 법적으로는 북한 주민에 사망한 상태였기에 외교적 문제로 그를 공식적으로 도와줄 수 없다는 여러 단체의 대답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장무환 씨를 숨겨주었던 곳에서 제작진과 장무환 씨, 그들의 가족이 나가려고 하자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까지 했다.
설득에 설득을 끝에, 원래 달라고 했던 돈보다 약간 적을 돈을 내고 나갈 수 있었으며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 기차를 타고 항구도시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는 아주 긴 여정이 시작된다. 기차를 타고 항구도시까지 어찌저찌 공안의 눈을 피해 갔으나 장무환 씨는 여권이 없었기에 결국 가족들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때 영화와 같이 영욱 씨의 삼촌에게 의문의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 장무환 씨의 여권을 만들어주어 여권을 가지고 배에 오른다. 출국심사대에서 중국에 입국했다는 도장이 없다고 다시 난관에 부딪혔지만, 삼촌의 억지(?)로 다행히 심사대도 넘기고 겨우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장무환 씨는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가족들과의 상봉이 아니라 면역식을 했으며, 수십년이 지나서야 제대를 한 것이다. 그 이후로는 한국에 들어와 아내인 순남 씨와 13년을 살다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사실 장무환 씨는 아내인 순남 씨에게 북에는 자식이 없다는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그는 북한에서 자녀 5명을 낳고 손자까지 본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도 포로로 끌려가 탄광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일을 하고, 북한이 탈북을 막기 위해 강제로 결혼을 시키기도 했고, 외로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니 순남 씨에게 진실을 말했다. 순남 씨는 화를 조금 내기는 했지만 그건 자신을 속였다는 것 뿐만 아니라 북한에 있든 남한에 있든 이산가족이 될 수 밖에 없는 장무환 씨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장무환 씨는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셨는데 가끔 ˝북한에 가서 가족을 보기도 했다˝는 말을 하며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고국의 땅에서 눈을 감으실 수 있게 되었다.

억울하게 북한에 끌려가 인생의 반을 힘들게 살아야했던 모든 국군포로 병사님들의 이야기였다.
그냥 상황이나 전개 자체가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재미 자체도 있었고, 언제나 늘 그랬듯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 들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 밤에는 밤새도록 어디 가려고 막난리 치더라 이거지. 아버지한테 "어젯밤에 어디 갔다 왔어요?" 하니까 뭐 ‘북한에도 갔다 오고 고향에도 갔다 오고 했다‘ 하더라. ‘북한에 가갖고 엄마 만나고 왔어요?" 하니까 만나보고 왔다 하더라고.
-장영욱 씨(장무환 씨 아들)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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