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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곽명단 옮김 / 물푸레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몇 주 전 친구의 아버님이 갑작스럽게 병환으로 돌아가셔서 친구의 슬픔을 나눠주려고 장례식장에 방문했었다. 상갓집 방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친구의 부모님 상으로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 기분이 더 착잡했다. 친구가 장남인데다 아버님이 살아생전 애정이 남달랐기에 가족들과 더불어 친구의 슬픔은 더욱 컸다.
그 친구와 잠시 이야기했었던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고지식하고 엄하신 아버님의 성격 때문에 그 친구는 성인이 된 후 여러 이유로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벽을 쌓고 있었다. 생각지도 않게 작은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위독해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이후 아버님은 유난히 그 친구를 자주 찾으셨고, 그 때마다 별 말씀 없이 자신의 아들을 보며 미소를 띠우시곤 했다고 한다. 친구도 아버님의 생명에 지장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기에 그냥 무덤덤하게 대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아버님의 증세가 갑작스럽게 더욱 위독해지셨다. 어머니를 집에 데려다드리고 친구가 교대로 병원에 들렀고, 그 날 그렇게 돌아가셨다. 친구말로는 자신이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호흡하는 것을 힘겨워하셨고, 자신을 손짓으로 부르셨다고 한다. 그 때 힘겹게 하신 말씀 중에 ‘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평범한 이야기 같았지만, 그 말을 하던 친구도 한참을 울먹였고, 듣고 있던 나도 가슴이 찡하고 슬퍼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그 날, 여느 상갓집에 갔을 때 느꼈던 감정 이상에 뭔가를 느꼈고, 친구의 가족상은 나의 가족상과 비길 만큼 가슴 아팠기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정상이실 때 자신이 용서도 못 구했고, 사랑한다는 말도 못 전해서 평생 한이 될 것 같다고 했지만, 마지막 아버님의 말씀이 자신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길게 사연을 쓰는 것은 이 책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스물두 명의 실화들이 친구의 이야기와 동일한 느낌으로 다가와서다. 친구는 그 날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서받았으며, 아버지와의 사랑을 절실히 느끼며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보내드릴 수 있었다. 반면에 친구의 누나와 남동생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에, 그 친구가 아버지와의 감정의 벽을 허물어트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순간의 해방감과 사랑을 느낄 수는 없었다. 언젠가 친구와 같이 마음 한켠에 감정의 찌끄러기를 깨끗이 지울 날이 있겠지만, 아마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렇게 임종의 순간 서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극적이고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는지를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30년 동안 세계적인 호스피스 전문의로 활동하며 고통스러운 임종을 앞둔 수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에 작별의 순간을 보아왔고, 그 안에서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힘든 네 가지 진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이후에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일깨웠고, 이제 책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용서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잘가요” 이 평범하고 짧은 말 몇 마디의 위력은 임종을 앞둔 사람들과 가족들, 또는 친구들 사이에 풀지 못한 감정의 벽을 한 순간에 허물어트려서 죽음 앞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해주고,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말 몇 마디가 불가능할 것 같았던 관계마저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잘해라“라는 말을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지만, 그만큼 죽음은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어느 순간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해와 감정의 상처로 마음에 벽을 만들고 결국, 용서와 화해의 기회는 나중으로 미뤄버린다. 이러한 상처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골이 깊어지고, 결국은 상대방보다도 자신에게 평생토록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내며, 그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최근에 읽었던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히 부유하거나, 외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진실하고 원만할 때 행복한 사람들이 많았고, 가족과의 관계가 좋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과 명예 등의 외적인 것보다는 관계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과 가족들이 용서와 사랑의 말로 극적으로 화해하고, 아픔을 치유한 실제 경험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던 친구의 이야기나 이 책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현재 가족이나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더더욱 이 책의 멧세지에 경청하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실천하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또한 당장은 죽음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이 책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작은 오해로 인해 관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풀리지 않은 관계를 갖고 있다면, 이 책의 내용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이 책에서 권하는 아주 작은 시도만으로도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하며 관계를 회복하여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