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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을 보았다 ㅣ 나는 천국을 보았다 1
이븐 알렉산더 지음, 고미라 옮김 / 김영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보니 임사체험과 영적체험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다양한 책을 통해서 간접적인 정보를 접하기도 했다. 이 책 역시 그런 관심의 연장선인 셈이다. 더욱이 최근에 임사체험에 관한 뇌 과학적인 고찰에 관한 책을 접했기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남달랐다. 그 책은 뇌 과학 전문의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임사체험과 영성체험을 뇌 과학과 영적인 측면에서 고찰해갔지만, 이 책은 뇌 과학자가 직접 임사체험을 했다는데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뇌 과학자이자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갑작스럽게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의사들조차 명확한 치료가 어려웠고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뇌가 녹아내릴 정도의 위험한 상황이라 생존조차 보장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7일 만에 깨어났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저자는 혼수상태인 동안 현재 의식의 세계에서 떠나 영적인 세계를 여행했다. 안내자를 따라 황홀하고 신비한 경험을 했고 넘치는 사랑과 평화를 체험했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아는 의사소통의 방법은 아니었지만,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했다.
영적인 세계에서 시간은 우리 세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거기서는 사건이 반드시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한 순간이 한 평생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하나 혹은 여러 생애가 한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우리 수준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지라도 뒤죽박죽은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뇌의 일부에서 이상이 생기면 환영을 보거나 환상을 볼 수 있고 왜곡된 경험을 할 수 있다. 저자 역시 뇌 과학자로 이 부분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기에 자신의 상태가 그런 상태와는 달랐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양한 가설을 토대로 접근해봤지만 현재 알려진 뇌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개연성이 없었다. 그가 경험한 영적체험의 정교한 기억들은 일시적인 환상의 기억이 아닌 선명하고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저자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현재 세계의 모든 기억이 돌아오는데도 2달 가까이 걸렸다. 이후 잠시 내면에서 의심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사체험의 기억은 선명해졌고 믿음은 확고해졌다. 과거에 의사라는 신분에서 영적인 부분을 제외했다면 지금은 그것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임사체험 이후 깨달은 삶의 근원적인 깨달음과 통찰을 주변에 알리기 위한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고 자신의 위치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다.
임사체험과 관련해서 사람들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임사체험을 믿는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관련 책을 읽었거나 임사체험을 경험한 친구나 친지를 둔 중간자적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중간자적 사람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의 천국 체험은 천국 묘사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는 임사체험의 과정과 저자의 사유, 그리고 영적체험 이후 깨달은 우주와 물질세계의 존재,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 등에 초점을 맞춰 풀어간다. 가시적인 어떤 경험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모두가 사랑받는 존재이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합일에 대한 깨달음 등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영적세계의 존재에 대한 증명과 더불어 이러한 성찰을 공유하고자 했다.
뇌 과학자가 임사체험을 겪고 쓴 글이라 인상 깊게 읽어갔지만, 개인적인 기대감에는 조금 못 미쳤다. 에세이다 보니 저자가 임사체험을 겪기까지의 과정과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 넘게 전개되면서 임사체험의 디테일한 묘사가 적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표현했듯이 인간이 된 경험을 하고 돌아 온 침팬지가 그 경험을 침팬지 세계에서 이해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 이 책 역시 이제 첫 발을 내딛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좀 더 세밀하게 기억을 더듬고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다음 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이를 통해 저자가 깨달은 성찰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