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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서울과 가까운 인천이 고향이었지만, 학창시절에는 그다지 서울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특별한 관심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경력이 쌓이다보니 직장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고, 그렇게 정착해서 살아온 것도 어느 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고향인 인천만큼이나 서울이 편하고 익숙해졌다.
앞으로 서울에서 얼마나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내 생애 절반이상을 살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서울에 대한 나름의 애착도 생겼기에 최근 몇 년간 서울에 가보지 않은 곳을 디지털 카메라 하나 들고서 종종 거닐어보곤 했다. 이 책이 개인적으로 더 끌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이 일러스트 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5년 동안 서울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스케치한 일련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접하고서 서울의 풍경을 담은 따뜻한 느낌의 디테일한 스케치들과 저자만의 감성적인 느낌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기대했는데, 막상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다보니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감상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서울의 역사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서울의 각 장소들의 특성과 유적들, 건물 등에 대한 역사적 지식도 상세하게 언급되었고, 과거의 모습과 변화된 현재의 모습도 스케치로 공유되어 있어서 마치 그림으로 되어있는 역사박물관을 관람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에는 경복궁, 명동, 수진궁, 효자동, 광화문 광장, 종로, 청계천, 우정총국, 정동, 혜화동, 경교장, 딜쿠샤, 인사동의 14곳을 바탕으로 주변 거리 풍경과 역사적인 정보, 공원모습과 주변의 크고 작은 소품들, 유적지와 오래된 건물의 모습과 유래들, 박물관과 가게의 모습, 각 지역의 약도와 건축스타일 등이 다양한 스케치 그림을 통해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책 한 권에 담긴 서울의 풍경과 역사를 그림과 함께 따라가다 보면 지루할 틈 없이 어느새 몰입하게 된다.
유행처럼 서울의 맛집과 공원, 등산로, 번화가 등 입소문이 난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정말 모르고 다닌 것이 이렇게나 많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많이 거닐었던 명동과 종로의 거리, 인사동, 덕수궁, 경복궁, 혜화동, 정동 등이 이 책에 모두 언급되지만, 이 책에서 공유한 정보들 중에서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이 손에 꼽는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기도 했다.
우리의 서울에는 태풍으로 삶을 마감한 300살의 소나무도 있었고, 18일 만에 문을 닫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도 있었다. 앨버트 테일러라는 기자는 서울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세계최초로 타전하고 죽어서 이 땅에 묻혔다. 1997년 명동에서 3인조 소매치기단이 뒤쫓던 경찰을 회칼로 찌르자 인근 액세서리 행상이 맞서다가 운명을 달리했고, 정의로운 청년 이근석님의 추모비가 명동의 모퉁이 한 쪽에 남겨졌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곁을 스쳐 지나쳐간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역동적인 대도시이자 쇼핑 및 문화의 중심지인 이곳에는 침탈의 역사와 전쟁의 아픔도 남아있고, 자랑스러운 역사와 성장의 흔적도 남아있다. 반면에 매일매일 이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는 나지만, 서울의 풍경과 이야기에는 무관심했고 정치와 경제 이야기, 교통체증과 물가이야기, 방송과 연예소식 등에만 습관처럼 익숙해진 듯싶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도 서울의 삶이 각박하고 바쁘게만 느껴졌기에 이 책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과 이야기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앞으로는 서울에서 시작하는 하루가 좀 더 새롭고 활기차게 변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본다. 또한 이 책에 나와 있는 장소들을 이제는 남다른 생각과 느낌을 갖고서 둘러볼 수 있는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