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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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 논란이다, 스타작가의 과잉기대다 논란이 많지만
SBS '신기생뎐'을 본방사수 하고 있는 나로서는, 모두 조금은 이른 판단들이 아닌가 싶다.
6회까지 방영된 SBS'신기생뎐'은 원작 소설의 주무대인 '부용각'의 비중이 (아.직.은) 높지 않다. (총50부작)
'임성한표막장카드'를 포함한 (^^) 소설의 주된 내용들이 어떻게 전개될 지 앞으로가 기대된다. 

아직 드라마와 책을 비교하기 이르지만, 원작소설 <신기생뎐> 에서는 군산의 기방 '부용각'을 중심으로 기생과 그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7편, 연작으로 담겨있다.
부엌어멈, 오마담, 춤기생, 기둥서방, 집사의 사랑, 서랍이 많은 사람, 부용각
특유의 기생집 정취나 입말은 책이 훨씬 나은 듯하다.
미스 민이 화초머리 올릴 때, 그 장면...아! 춤기생의 춤사위가 눈에 선해 여자인 나도 아~사르르 녹는다, 녹아^^

 

 "기생은 마음에 굳은살이 배겨 송판처럼 딱딱해져야 온전한 기생으로 완성이 된단다. 송판처럼 딱딱해진 다음에야 몸도 마음도 물처럼 부드럽게 열릴 수 있는 법이거든. 정을 둔 곳이 있고 없고는 나중 일이다. 나는…… 남자를 믿지 않았다."

"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합창하는 소리기생들. 그도 그럴 것이 오마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국에 퍼져 있는 기방을 통틀어, 늙고 젊은 기생들을 대표하는 연애전문가가 아니던가. [중략]

"남자를 믿은 적이 없으니 그들이 날 버려도 배반을 해도 난 언제나 모든 걸 내줄 수가 있었다. 남자를 부정하고 나니 모든 남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너른 품이 생기더라. 이게 내 사랑의 방식이었느니. 느들 보기엔 내 사랑이 물 위에 뜬 거품처럼 부질없어 보였는지 몰라도."

"……"

"뜬금없이 들리겠다만, 철새들이 한 철 머물다 가는 철새도래지라고 있지 않냐? 사계절 먹이가 풍부하고 추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아서 철새들의 쉼터나 잠자리가 되어주는 을숙도나 주남저수지 같은 곳 말이다. 나는, 내 무릎이 남정네들에게 철새도래지 같은 그런 도래지가 되었으면 싶었구나."

 

_<신기생뎐> 69p '오마담' 중

 

"사랑은 말이다. 가루비누랑 똑같은 기다. 거품만 요란했지 오래 쓰도 못 허고, 생각 없이 그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마 살 속의 기름기만 쪽 빼묵고 도망가는 것도 글코, 그 물이 담긴 대야를 홱 비아뿌만 뽀그르르 몇 방울 거품이 올라오다가 금세 꺼져뿌는 기 똑 닮었다. 오늘 새벽에도 미스 민 애인이 질게 끌마 한코에 조질라고 굵은 소금을 퍼가지고 안 나갔나. 그랬디마 가고 없데. 소리만 요란했지 그기 뭐꼬. 할라마 모가리를 내놓고 뻑시게 해보등가."

"그 사람 대문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다구요. 난 지금도 사금사금 가슴이 시린데."

"새벽부터 재수없구로 사내새끼가 처울기는."

 

_<신기생뎐> 120p '기둥서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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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10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잠깐 봤는데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던데.
곁가지가 넘 많은 것 같아요.
소설은 집중도가 정말 좋았는데.
50부작이라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아, 전 아무래도 이 드라마 작가한테 맺힌 한이 있나 봐요. 어째...ㅠㅠ

해라 2011-02-14 09:33   좋아요 0 | URL
지난 주부터 슬슬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슬슬 재미있기 시작했다는. 시작부분이 소설과 좀 상이하죠? 아무래도 드라마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소설의 흡입력은 정말 최고!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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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맛, 죽이네! 사투리가 착착 입에 감긴다. <신기생뎐> 완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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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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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걸러 하루 허수경 시인님을 만나는 행복한 나날입니다.
허수경 시인의 방한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1월 이색 리뷰대회(http://cafe.naver.com/mhdn/21504)는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구요. (이실직고 말하면, 리뷰대회를 진행하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1월, 내내 저와 출퇴근을 함께했습니다.
가방 속에서 늘 함께였거든요.

귀하게 귀하게 허수경 시인님의 산문 하나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와락' 와 닿은 부분은 책 귀퉁이를 살짝 접어뒀어요.
 

 

 대구 촌놈, 코스모폴리탄

아주 존경하는 선배 두 분이 오셔서 나는 그 두 분을 모시고 베를린으로 갔다. 한 분은 영화감독이고 한 분은 시인이었다. 그분들이 거느린 직함이야 거창하지만 그 거창함을 다스리는 그분들의 겸손함을 나는 한없이 사랑했다. 유레일 패스를 끊어서 오신 터라, 그분들은 기차는 일등석을 탔지만 정작 그놈의 돈이 많지 않은 분들이라 일등석에서도 식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셨다.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안. 나는 이 유럽 땅에서 기죽어 사는 내 처지를 하소연했다. 영화감독, 사실은 옛 소설가인 선배 말이, "걱정 마. 내가 대구 촌놈으로 서울 가서 재수할 때, 재수학원 다닐 때 말이야. 서울 애들, 학원이 끝나고 난 뒤에 지들끼리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대단한 것 같더라구. 어디로 가는지, 멋진 곳으로만 가는 것 같더라니까. 몇 달 지나고 나니까 다 알겠어. 어디로들 사라지는지……당구장 아니면 극장, 극장 아니면 술집. 걱정 마, 우리는 다 똑같아. 삼시 세끼, 밥 포기 못 하는 이상 똑같어, 우리들은". 평화주의자, 평등주의자, 선배여, 그대가 옳다. 

 

 

왜 이 글 앞에 저는 한참 머뭇했던걸까요.
객지생활 14년차…… 저도 불쑥, 대학 때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때, '너는 집이 요 앞이라 좋겠다'(그때 저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으니까요), 했지만 사실 저는 막차 시간 맞춰서라도 분주하게 어디론가(대부분 집이었겠지요^^) 왠지 멋진 곳으로만 향하는 것 같은 친구들의 발길이 부러웠어요.
기숙사 문 잠그는 시간 맞춰서 나도 캠퍼스를 분주하게 걷지만 왠지 서글펐던 그 때.
이 글을 읽자, 그 때가 떠오릅니다. 

 

 
 

가소로운 욕심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서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 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 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들은 언제나 리본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껑충거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나보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이 글을 읽으며 먼저는 아찔했고, 다음은 뜨끔했습니다.
차에 치인 토끼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시인의 마음의 굳이 상상하지 않더라도 글만 읽어도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리고 토끼 목에 묶어준 리본은 없지만, 나는 또 어떠했나 생각해보니 가슴이 뜨끔,
가소롭게 욕심내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시인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닿은 부분에 접으리라 생각했던 책 귀퉁이는, 사실 접은 부분과 안 접은 부분의 의미가 거의 없을 지경입니다. 앞서 눈송이 슈퍼스타 님도 리뷰에서 썼지만(http://cafe.naver.com/mhdn/22177)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으며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시인의 '그리움'과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시인과 마음을 함께했습니다. (함께했다고 믿고 싶어요^^).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있을 낭독회가 끝이나면 또 당분간 허수경 시인을 못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게 이 책,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 있으니까요. 시인이 보고 싶을 때, 나는 책 귀퉁이를 찾아 들춰볼 것입니다. 오늘을 기억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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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 만만치않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두 엄지 다 들겠다!! 

  

 

타인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 자.

 

 
로부터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착하게 살아야겠다.

 


주호민 <신과 함께>를 읽었던 지난 주말, 많이 반성했다.

재미를 주는 만화라 하지만

이 만화,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마음을 울릴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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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01-10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 재밌어요? 웹툰 찾아봐야겠다 ^^

해라 2011-01-26 16:30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뿐만이 아닙니다. 정말...
지금 두 엄지 들었어요. ㅎ

하이드 2011-01-1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라님, 먼댓글 부러 막아 놓으신거에요? 일부러 하신거 아니시면 풀어보면 어때요? ^^

해라 2011-01-26 16:29   좋아요 0 | URL
헉! 알라딘서재 입문단계라 ㅎ
먼댓글을 제가 지금 막아놓은건가요? 이럴 수가. 많이 가르쳐주세요.
하이드 님 ㅎ
 
7번국도 Revisited (특별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절판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둘러싼 기억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죽어간다. 우리는 그걸 ‘학살’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의 날씨를 잊었고, 싫은 내색을 할 때면 찡그리던 콧등의 주름이 어떤 모양으로 잡혔는지를 잊었다.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던 이층 찻집의 이름을 잊었고, 가장 아끼던 스웨터의 무늬를 잊었다. 하물며 찻집 문을 열 때면 풍기던 커피와 곰팡이와 방향제와 먼지 등의 냄새가 서로 뒤섞인 그 냄새라거나 집 근처 어두운 골목길에서 꽉 껴안고 등을 만질 때 느껴지던 스웨터의 까끌까끌한 촉감 같은 건 이미 오래 전에 모두 잊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그 사람의 얼굴이며 목소리마저도 잊어버리고 나면, 나만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들로 가득했던 스무 살 그 무렵의 세계로, 우리가 애당초 바라봤던, 우리가 애당초 말을 걸었던, 우리가 애당초 원했던 그 세계 속으로 완전한 망각이 찾아온다.
-38p쪽

완전한 망각이란, 사랑 안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보존. 그러니 이 완전한 망각 속에서, 아름다워라, 그 시절들. 잊혀졌으므로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기억의 선사시대. 이제 우리에게는 그 시절의 눈이 -39p쪽

여기 남아서, 가끔씩 혼자 7번국도를 상상했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 지금까지 내가 본 길들만 생각났지만, 어떤 날에는 불현듯 뭔가가 또렷하게 보일 때도 있었어요. 돌멩이를 쥔 주먹 같은 것, 혹은 바람에 긁힌 두 뺨의 얼굴. 그리고 바다, 바다, 바다...... 바다를 생각할 때면 늘 영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 없이 그대로인 세계. 물질들은 생겨났다가 또 사라지지만, 그 시간과 공간만은 바뀌지 않는 세계. 그런 세계 속에서 내가 태어나 자랐어요. 이쪽에서 저쪽으로, 쉬지 않고. 나는 무엇에도 고정되지 않아요. 그저 경험할 뿐. 왜냐하면 나는 영원하지 않으니까. 그걸 생각하면 두려울 건 하나도 없어요. 계속 움직일 뿐, 두려움은 여기 없어요.
-186p쪽

사랑에 대해서 말하려고 이렇게 에둘러 왔네요. 이제는 죽고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사랑하는 일. 그 모든 사랑이 내게는 공평하고 소중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끝까지 남아 그 사랑들에 대해서 말하는 증인이 되는 것. 기억의 달인이 되어, 사소한 것들도 빼놓지 않고, 어제의 일인 것처럼 늘 신선하게,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기억들이 남을 수 있도록, 이 세계 곳곳에 그 기억들을 숨겨두는 일.
-187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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