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 걸러 하루 허수경 시인님을 만나는 행복한 나날입니다.
허수경 시인의 방한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1월 이색 리뷰대회(http://cafe.naver.com/mhdn/21504)는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구요. (이실직고 말하면, 리뷰대회를 진행하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1월, 내내 저와 출퇴근을 함께했습니다.
가방 속에서 늘 함께였거든요.

귀하게 귀하게 허수경 시인님의 산문 하나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와락' 와 닿은 부분은 책 귀퉁이를 살짝 접어뒀어요.
 

 

 대구 촌놈, 코스모폴리탄

아주 존경하는 선배 두 분이 오셔서 나는 그 두 분을 모시고 베를린으로 갔다. 한 분은 영화감독이고 한 분은 시인이었다. 그분들이 거느린 직함이야 거창하지만 그 거창함을 다스리는 그분들의 겸손함을 나는 한없이 사랑했다. 유레일 패스를 끊어서 오신 터라, 그분들은 기차는 일등석을 탔지만 정작 그놈의 돈이 많지 않은 분들이라 일등석에서도 식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계셨다.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안. 나는 이 유럽 땅에서 기죽어 사는 내 처지를 하소연했다. 영화감독, 사실은 옛 소설가인 선배 말이, "걱정 마. 내가 대구 촌놈으로 서울 가서 재수할 때, 재수학원 다닐 때 말이야. 서울 애들, 학원이 끝나고 난 뒤에 지들끼리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대단한 것 같더라구. 어디로 가는지, 멋진 곳으로만 가는 것 같더라니까. 몇 달 지나고 나니까 다 알겠어. 어디로들 사라지는지……당구장 아니면 극장, 극장 아니면 술집. 걱정 마, 우리는 다 똑같아. 삼시 세끼, 밥 포기 못 하는 이상 똑같어, 우리들은". 평화주의자, 평등주의자, 선배여, 그대가 옳다. 

 

 

왜 이 글 앞에 저는 한참 머뭇했던걸까요.
객지생활 14년차…… 저도 불쑥, 대학 때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때, '너는 집이 요 앞이라 좋겠다'(그때 저는 학교 기숙사에 살았으니까요), 했지만 사실 저는 막차 시간 맞춰서라도 분주하게 어디론가(대부분 집이었겠지요^^) 왠지 멋진 곳으로만 향하는 것 같은 친구들의 발길이 부러웠어요.
기숙사 문 잠그는 시간 맞춰서 나도 캠퍼스를 분주하게 걷지만 왠지 서글펐던 그 때.
이 글을 읽자, 그 때가 떠오릅니다. 

 

 
 

가소로운 욕심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서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 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 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들은 언제나 리본을 달고 나에게로 왔다. 껑충거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았나보다. 어느 날 나는 기숙사 주차장에서 차에 치인 토끼를 보았다. 그리고 푸른 리본도 보았다. 나는 또 욕심을 내다가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다. 내 것이라고 표시하기, 얼마나 가소로운 욕심이었는가. 마치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 것이라고 표시되기를 바랐던 그때의 눈먼 나처럼……

 


이 글을 읽으며 먼저는 아찔했고, 다음은 뜨끔했습니다.
차에 치인 토끼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시인의 마음의 굳이 상상하지 않더라도 글만 읽어도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리고 토끼 목에 묶어준 리본은 없지만, 나는 또 어떠했나 생각해보니 가슴이 뜨끔,
가소롭게 욕심내지 말아야지, 그러지 말아야지……
 

 

 

시인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닿은 부분에 접으리라 생각했던 책 귀퉁이는, 사실 접은 부분과 안 접은 부분의 의미가 거의 없을 지경입니다. 앞서 눈송이 슈퍼스타 님도 리뷰에서 썼지만(http://cafe.naver.com/mhdn/22177)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읽으며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 시인의 '그리움'과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시인과 마음을 함께했습니다. (함께했다고 믿고 싶어요^^).


오늘 정독도서관에서 있을 낭독회가 끝이나면 또 당분간 허수경 시인을 못만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게 이 책,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이 있으니까요. 시인이 보고 싶을 때, 나는 책 귀퉁이를 찾아 들춰볼 것입니다. 오늘을 기억하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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