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 - 한 ‘비전향장기수’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넘어서는 염원
신현칠 지음 / 삼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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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동지와 마르크스, 레닌.

공산주의, 사회주의, 비전향 장기수.

사실 난 이런 용어에 낯설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싫어요-이승복 어린이의 외침에 얼굴을 붉히며 웅변을 하던 어린시절.

빨갱이, 똘이장군을 보며 무조건 반사적으로 공산당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

일본어학연수를 다녀오며 많이 다른 것을 봤다.

공산당. 일본의 공산당, 사회주의당이 존재하고 소속된 국회 의원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보다도 더 앞선 의회 민주주의를 이룩한 것일까?

남과 다른 의견을 청취하는 성숙된 인격을 보여주는 걸까?




도서출판 삼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 듯 싶다.

비전향 장기수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넘어서는 염원이란 부제를 달고,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라는 책을 펴냈다.




저자는 신현칠이라는 92∼93세의 비전향장기수.

비전향장기수는 <(민주주의로의) 사상전향을 거부한 채 장기복역한 인민군 포로나 남파간첩>을 말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잡힌 (남파)간첩가운데 국가보안법·반공법·사회안전법으로 인해 7년 이상의 형을 복역하면서도 사상을 전향하지 않은 장기수를 말한다. 1960년대를 전후하여 풀려났다가 1975년 사회안전법이 제정되면서 보안감호분을 받아 재수감되어 평균 31년 정도 감옥생활을 했다.




솔직히 선입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그들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없어져야할)사상을 지닌 이단아였기에.

우리나라는 파탄에 빠뜨린 범죄자들이기에,

<나도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마자 저자의 서문에 이런 글이 있다.

<필부유책-자기가 사는 시대의 역사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중략)문득 역사에 현역으로 참가하지 못하여도 현역의 정신으로 참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까(생략). (p10∼11)>




지금은 93세를 바라보는 나이.

(책에 있는 저자는 1917년 서울출생으로 되어있다)

1952년 남파간첩활동 중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10년의 투옥.

사회안전법으로 1975년 다시 투옥, 1988년 이 법의 폐지로 72세 비전향 출옥했다.




저자 신현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게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무려 60여년을 감옥에 계셨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그의 신념은 이제 93세의 나이에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라도 끝까지 저자의 서문에까지 새겨넣었다.

그가 신념의 역사적 산 증인으로 본다면 다분히 존경스럽다.




책은 의외로 읽기 편하다.

전체 4부로 수졸산방에서로 시작해서, 비전향장기수 송환에는 남은 일이 있다, 50년 만의 편지, 엄혹의 시대까지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은 발문으로 박소연 씨의 <천외에 던지는 시-나의 스승, 신현칠 선생님>이란 글이 실려있다.




비전향이란 단어 하나에,

이 책이 공산당에 대한 찬양의 글로 가득차고,

독자로 하여금 투쟁과 선동을 일삼는 글이라 생각했던 내 선입견.

바로 무지와 사람됨이 부족함을 나타낸 것 같아 부끄럽다.




북으로 송환되어 영웅이 된 그들보다,

남쪽에 남아 자신의 못다한 꿈을 질책하는 삶.

서울 수졸산방에 고작 몇 푼의 돈을 벌기위해 힘겨운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고,

힘든 일상의 단면을 드러내고,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일상사를 남긴 글이다.




<진실로 책이 너무 많다. 아버지 말투를 비려 예전에는 책을 본다는 일이 반드시 진리를 탐구한다, 홍익인간이다 하는 따위의 거창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먹고살기 위한 돈벌이로 책은 쓴다, 또는 이름을 낸다는 일로 책 쓰는 일은 적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p57∼58)>




세상을 향한 일침이다.

평소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숙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책들 가운데 양서를 골라 읽고 스스로를 깨우치는 글읽기.

<책이 있어 책을 본다>라는 막연함보다 서적공해(저자의 표현이다)다.




<자기가 소중하게 가지는 신조(그리스도인에게는 신앙이겠지요)를 의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시험해보지 말라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무엇인가 진실로 소중한 것을 지키는 모든 사람의 고뇌이고 투쟁이고 승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p135)>




<예수는 누구인가-기독교인 회합에서 담화>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해방신학, 마르크스, 레닌, 교회사, 유물론자와 같은 논쟁꺼리가 다분한 글이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에서 그의 신념을 봤다.

그의 감옥의 60여년을 이겨낸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늠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이후에도 저자의 일상의 기록들이 담겨져 있다.

자신이 일기부터,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시대상황에 따른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놓았다.




자신만의 90평생을 하나의 신념으로 버텨온 그의 삶이 존경스럽다.

책 가운데 조금씩 보이는,

그의 학문에 대한 폭 넓은 지식들을 나누는 대목에서는,

선인의 지혜가 엿보이기까지 하다.




사회의 성숙도란 무엇일까?

이제 비전향 장기수의 공산주의자의 책까지 나왔으니 우린 성숙된 민주사회에 살고 있나?

나와 다른 주장을 펼치는 이를 받아들이고 있으니 우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가?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보게 만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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