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이돌을 두고 좋아했던 감정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저는... 진짜 공감합니다

그런 놈들이 꼭 있습니다

남자 5명 좋아하면 여자 50명 좋아하는데

꼭 부끄러운 짓은 남자가 합니다

내얘길들어보셈 이게진짜근거가없는얘기가아님

적어도내인생에서는진짜중요한얘기임ㅠㅠ


저는 이름처럼 뱅! 하고 터져버린 모 남돌을 좋아했고...

중딩때는 이외수를 좋아했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애책은 아불류시불류였음...

그러다가 유럽근대고전문학으로 빠지면서

자연스레 oisoo에게는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솔직히 이사람 소설은 너무 별로였음

중2였던 내가 봐도 그 소설은 너무 중2병같아서

oh,,, 하고 관둠)


그런데 이사람이 그 뒤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면서

오우ㅋㅋ 하고 관심을 아예 거두었어요

하... 할배 그래도 제가 할배 책 다섯 권 넘게 삿어요 딩중이...

그래도 아예 싫진 않으시죠? 할배 믿어요^^


좋아했던 감정을 부끄럽게 만드는 놈...

이라는 표현은 남자아이돌, 남자배우 등 남자 연예인 팬덤에서 주로 나오던데

저는 그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이게 문인, 작가들에게 향하더라고요.


피카소: 노인인데 10대 후반 여자애 사귐 (진짜 제정신이세요? 손녀 반응이 이해가 갑니다)

디카프리오: 나이 계속 먹는데 데이트 상대는 25살을 넘지 않음

디킨스: 바람핌

푸코: 어린남자애들 삼

고갱: 하............................................................

고흐: 그... 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우셨던 건 아마도 여자와 술을 사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야이

야이

야!!!!!!!!!!!!!!!!!!!!!!!!!!!!!!!!!!!!!!!!!!!!!


이렇게 사생활이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왓츠더매러인 사람도 많지만

시대의 한계를 잘 드러내는 사람도 있긴 하죵...


저는 헤르만 헤세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이유는...

헤세의 데미안에서 여성 등장인물을 다루는 방식을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비판했는데

어떤 사람이 과거의 일인데 지금 잣대로 판단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하는거임

왓?????????????????????????????????????????????

저기...

비판적 독서를 안 할 거면 책을 왜 읽으시는 겁니까?

이런 고차원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금 에이시언 소녀가 유럽 백인 남성을 쉴드치시는건가요?ㅋㅋ

하는... 원색적인 비난이ㅋㅋ 바로 떠오르더군용ㅋㅋ


하...............

다시 생각해도 답답하네


제가 해새를 안 조아해서 그렇지(너무 내면에만 집중해서 너무 많이 '덜 정치적'인 것 같음)

해새 좋아했으면?

에바 부인과 베아트리체의 쓰임을 보고

슈퍼페미로서 사자후 내지르고

좋아했던 감정을 부끄럽게 만드는 놈은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겠죠

이미죽었지만


그래서 저는 일하다가 만난 oisoo의 책을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야기 끝





여담


헤세의 데미안은 여캐를 못 쓰는 게 맞음

이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할 짓이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 있을 만큼...

이사람의 독서 에세이 읽으면 상정하는 독자가 남자고 여자는 전혀 고려 안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에바 부인: 상식적으로 아들보다 어린 남자에게 때되면 님한테 쟁취될게요^^ 하는 여자가 어딨음 정신차리셈 여자...를 상상으로만 만나본 것임?

베아트리체: 실제 베아트리체는 싱클레어 눈에 한 번 띄고 만 게 전부인데 자기는 인지도 못 했을 남자에 의해 망상당하다가 어떤 남자랑 겹쳐지는 것으로 끝나는 거 페미니즘적으로 기분나쁨

물론 저는 에바 부인이 실제의 생생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은유의 성격이 더 강할 거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지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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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0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아 이외수에서 진짜 이 야밤에 엄청 크게 웃었습니다. 너무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데미안>을 최근 다시 읽었는데 진짜 몹쓸 부분이 너무 많아서 힘들더라고요 .ㅎㅎㅎ

책식동물 2023-07-10 01: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외수...의 짤막한 에세이를 정말 좋아했었죠ㅠㅠ 그런데 사실 그... 그정도 연세 되시면 뭐... 대체로 경험과 시간에서 체득하셨겠지...? 라는 생각이 드는 성인입니다...ㅋㅋㅋ 그리고 개인적으로 글쓰다가 안되면 살자하겠다고 장인에게 아내랑 애들 부탁한다고 하고 폐관수련한 것도 이해가 안 돼요 그...럴거면결혼을하지마셨어야? 하는 남겨진 여자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 갑자기 열받네 나도 시부모에게 글쓰다가 안되면 살자할테니 남편 재가시켜주세용>< 하고 폐관수련하러 갈까보다...

데미안... 저 사실 민음사 2회 문동 1회 읽은 게 다라서 재독해야 하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고리타분한 유럽 백인 아저씨보다 페미니즘적으로 진보한 책이 워낙 많다보니 아깝...아깝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헤세는 데미안 재독과 헤세 종결작인 유리알유희 읽고 내 생에 걍 치워버릴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헤세 단편이나 다른 작품도 읽어봤고 안 읽어본 것들도 내용은 대충 알고 있는데 어쩜 그렇게 남자 입장에서만 쓸까 놀라워요... 결혼은 어떻게 하신 걸까 어떻게 세 번을 하신 걸까... 그런 인식으로

은오 2023-07-11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우 ㅋㅋ
이미죽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
좋아했던거 부끄럽게 만드는 아직 살아있는 놈들의 재기(사전적 재기 말고)를 기원하며.. 많이 웃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책식동물 2023-07-11 12:52   좋아요 0 | URL
좋아요 100번 남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휴... 과거는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추잡스런 남자가 한둘이 아니라 참 유감입니다...
 

리뷰 자주 읽어요.

뭐 사려 할 때 일단 초록창에 그걸 검색하고 뜨는 블로그 리뷰를 싹 다 읽어봐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 가는 책이 있으면 리뷰를 싹- 읽습니다.


리뷰 좋아해요.

관심있거나 사고자 하는 것에 대한 정보, 사용팁도 얻고 저한테 맞나 안 맞나 판단할 수도 있어서 유익합니다.

책도... 내용이 아주 기막히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그럴 때 리뷰는 도움을 주더라고요.


책 읽으면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짱구 굴린 내용을 적당히 갈무리해서

리뷰를 쓰고 싶은데 그만한 솜씨도, 시간도 없어용...


어디서 읽었는데

서평의 역할은 독자를 행동하게 하는 거래요.

내가 다룬 책을 읽게 하거나, 읽지 않게 하거나.

그 문장을 읽고 나니까 리뷰 쓰면서 막막했던 마음에 먹구름이 걷힌 것 같았어요.

제 서평 인생(특징: 짧음)은 그 문장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그 뒤로는 참고해서 읽고 있어요.

주로 다른 사람이 그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시간이 없다는 것... 해결해주지 않아... 제기랄...

기존에 주기적으로 쓰는 글이 있는데,

그 글을 쓰는 법과 서평 쓰는 법은 달라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할 필요를... 느껴요.

우선은 짧게 100자평 쓰기에 익숙해지면

마이리뷰에 두세 문단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하고자...하...하고싶다


제가 읽었던,

그리고 읽을

서평 관련 책들.

아래에 소개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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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0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기랄에서 빵 터졌습니다.
하고자… 하…. 하고싶다 ㅋㅋㅋㅋㅋㅋ

책식동물 2023-07-10 00:12   좋아요 0 | URL
하...ㅠㅠㅠ 정말로 궁금합니다... 잠자냥 님을 비롯하여 제가 늘 잘 읽는 알라딘 리뷰어님들 리뷰를 읽으면 아니 이렇게 기가막히게 쓰실 수가 있나!! 방망이 깎듯 리뷰 깎으셨겠지??? 근데 시간이... 다... 시간을 내셔서 이정도 되신 거겠지??ㅠㅠ 그럴 때가 많습니다... 휴 사실 요즘 직장에서 자산 폐기(책은 자산이니깐^^)하느라 머리를 뽑고 있어서 깊.생.(깊이생각하기)을 못하는 것도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3-07-10 00:15   좋아요 1 | URL
방망이 깎는 노인 자냥ㅋㅋㅋㅋㅋㅋ
고라니 님 유머 코드가 재미나서 금방 알라딘 인기 서재 될 거 같은데요~

책식동물 2023-07-10 00:19   좋아요 2 | URL
어우 저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조아써 나도 노잼인간 탈피하여 알라딘 인기서재 되어야징!!!

은오 2023-07-10 0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웃긴게 저 서평도 안쓰면서 이 책이랑 저기 서평쓰기의 모든 것이랑 서평 글쓰기 특강 다 읽음 ㅠㅋㅋㅋㅋㅋ읽기만하는 자....
서평은 잠자냥님의 리뷰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많이 될거예요~! 잠자냥님 리뷰 하나 올라오면 온 알라디너들이 홀려서 책 사가지고 ㅋㅋㅋㅋ 잠자냥님 알라딘 직원아니냐는 의심이 있습니다 ㅋㅋㅋㅋ 매달 이달의 당선작으로 꼬박꼬박 알라딘한테 6만원 뜯어내시는분 (고라니님도 도전하세요!! 저는 첫달에 6만원 타고 조루가 되어.... 그 이후로 받은 적 없음. 담달을 노려보려고욬ㅋㅋㅋ)

책식동물 2023-07-10 00:3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원래 소설 안 쓰면서 소설 작법서 읽는 거 아닌감요??^^... 근데 은오님. 정말. 믿기지않는말씀.입니다.어떻게서평을안쓴다고하실수가.잇나요. 성스러운 동물성애자 리뷰 진짜 짱. 최고. 저는 은오님의 책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평은 더더욱...^^
근데 잠자냥님 알라딘 직원ㅋㅋㅋㅋㅋㅋㅋ의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리뷰를 얼마나 잘 쓰시고 거기다가 사람까지 현혹하시면(??) 알라딘 직원 의심을 받으시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달의 당선작이 되면 알라딘에게 영업지원금 아니아니 적립금 6만원을 받나요? 이거 정말 혹하네!!

다락방 2023-07-10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페이퍼를 통해서 <서평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도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놀라운 서평의 세계!!

책식동물 2023-07-10 12:31   좋아요 0 | URL
앞부분만 쬑곰... 읽었는데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어조가 다른 책들과 비슷하달까요ㅎㅎ 너무 자기계발서 같은 투를 좋아하지 않는 저는... 잘 읽을 것 같습니다. ㅋㅋ 서평은 안 쓰면서 서평 작법서만 읽어~~~
 



북플 친구 두 분의 상세하고 훌륭한 리뷰를 읽은 덕에 이 책에 가진 거부감을 덜고 시작했습니다. 원래부터 그리 크지는 않았고 본래 틀을 깨는 책을 좋아해서 먹고 죽더라도 먹어야지^^ 하고 먹고 있어요.


2장까지 읽었고 벌써 플래그가 많이 붙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혹은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등을 붙였어요. 새롭기도 새롭지만, 이 사람들이 깔고 있는 전제는 주파일이 아닌 사람들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관점 자체가 무척 흥미롭고 책도 재미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사실 남자들은 뭐가 문제냐 페모씨는 뭐가 문제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듯...........................................................

읽는 이의 식견을 묻는 책은 위험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위험한‘ 책 중 하나다. 독자가 어떤 자세로 책을 마주하는가에 따라 감출 수 없는 ‘본성‘을 드러내버리기 때문이다.
속되게 말해 ‘음담패설‘인가 싶어 책을 펼쳤다가 의외로 ‘너무나 진지‘할 정도로 진심이 담겨서 당황하는 독자도 있을지모르겠다. 혹은 어떤 독자는 도중에 "으웩!" 하고 구역질하며 책을 집어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반면 흥미진진하게 읽어가는 사이에 인간의 끝없는 ‘심연‘ 혹은 ‘신비‘라고도 할 수 있는 예상못한 깊은 ‘광맥‘과 맞닥뜨려 "음"하며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이 책을 읽으면 좋건 싫건 독자의 ‘본성‘이 드러나버린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저자와 함께 인간의 ‘성‘과 관련된 ‘비밀의 동굴‘을 헤치고 들어가는 동안, 자신을 덮고 있던 ‘상식‘이라는 딱지가 떨어져 나가고 스스로의 본성이 눈에 환히 들어오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히기때문이다. - P5

그렇지만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가 말한 "예외는 상태의 본질을 비춰낸다"라는 경구를 빌려본다면 ‘성‘과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동물성애자‘라는 ‘예외는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참조항‘이지는 않았을까? - P7

요컨대, 휴머니즘의 시대야말로 동물이 ‘사람‘이 정해놓은 경계와 구분에 따라 대량으로 죽임을 당하고 사람의 위장 속으로 사라져가는 시대다. 펫으로서 살아남은 동물들은다행히 ‘생生‘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성性‘을 박탈당한 ‘펫‘-‘순진무구한 어린이‘로서 다뤄지는 운명에 처한다. 개나 고양이를 ‘거세‘하는 관행은 그러한 상황을 매우 잘 보여준다. - P10

섹스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다양한 터부와 규범이라 한마디로 넓은 의미에서 ‘문화‘에 포함되는 작위적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간을 속박했고, 그렇게 정해진 규칙에 좌지우지되는 사회가 이어져왔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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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10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파일이 아닌 사람들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 공감합니다. 있는 그래도 존재를 사랑하기. 인간이 가장 못하는 일이죠. 고라니 님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책식동물 2023-07-10 00:17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동물 무척 좋아하고 반려멍멍이가 저랑 최대한 동등한 존재자로 존중 받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기에... 주파일이 전제로 깔고 있는, 인간의 편의대로 동물을 어케어케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게 두는 것을 실천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감ㅋㅋ 이런 생각이 2장까지 읽는 내내 계속 들더라구용,,, 제가 그걸 실천한다 해도 반려멍멍이의 다른 반려휴먼들은 아니니까 저도 괴롭기도 하고... 너무 어렵습니다. 현재까지 주파일에 대한 인상은... 그들이 글케 막 역겹진 않아요 동물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에 공감하고 있고 이 사람들이 이 전제를 잘 지켜줄 것 같아서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역겹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문제는 전두환이 제 원죄에 대해 전면 부정함으로써 그가 영원히 ‘공’에 해당하는 사항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큰 죄를 저질러놓고 그에 대해 일말의 사죄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 ‘살인자’로 귀결되어 버렸다. 그가 세상을 향해 "내가 잘한 점도 있었잖아!’"라고 외칠 때마다, 세상은 그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죄를 인식했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가 더 커다란 죄를 낳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죄의 부피에 압도되어, 전두환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갖고 있었을 ‘부분적인 미덕’이 완전히 가려지게 되었다.

전두환이 자신에게, 후손들에게, 국가 공동체 전체에게 끼친 세 가지 불행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단연코 마지막 요소, 국가 공동체 전체에게 끼친 영향이다. 뉘우치지 않고 간 거악(巨惡)의 존재 때문에 우리 사회는 상황을 있었던 그대로 들여다보고 정확하고도 면밀하게 각각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 과거를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갈 토대로 삼을 수 있게끔 방향을 설정하는 법,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을 파악하고 현실에 적합한 선에서 이상을 지혜롭게 실현하는 법, 누군가를 ‘절대 악’으로 설정해 희생양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법과 같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보유해야 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전두환 시절에 경기가 좋았던 것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나타난 3저(저유가, 저환율, 저금리) 호황이라는 외부 요인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라고 외쳐보았자 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특권을 타고난 이들은 어쩌면 그 특권으로 인해 행복에 대한 일부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전두환은 우리가 지나온 한 세기를 보여주는 인물, 시층이 겹겹이 쌓인 한반도의 20세기를 보여주는 절단면 같은 인물이다. 홉스적 자연 상태에 놓여 아비규환의 지옥을 살아내던 개개인이 다시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돌연변이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구성원 전체가 그 생물체의 파편을 지니고 가게 된 우리 사회의 대자아이기도 하다.
전두환을 읽어내는 일은 한국을 읽어내는 일이고,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국민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두환의 육신은 갔지만 우리는 아직 그를 보내지 못했다. 그의 육신이 떠난 지금, 그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가 한국사의 정확한 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존재했던 한 인물의 행적을 우리 사회 발전의 불쏘시개로 삼을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시간이다.

스물일곱의 청년 전우원이 나타난 것은 이런 고민에 빠져 있던 때였다. 선악에 대한 선명한 답을 도출해 내지 못해 씁쓸해하던 내 눈앞에, 전두환의 심장을 나누어 가진 청년이 나타났다. 선명한 발음으로 조부를 학살자라 칭하고, 광주로 날아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놀라운 광경 앞에서 나는 넋을 잃었다. 이것이 역사로구나! 겁 많고, 힘을 맹신하며,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던 장대한 무인 스토리의 끝이 그 무인의 손자가 출현하는 장면으로 끝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무인의 혈육이 그토록 순도 높은 사과를 내놓을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전두환의 손자가 만들어낸 이 대단원은 빛과 어둠 간 승부에 대한 강력한 답이다. 권선징악은 단번에 깃들지 않는다는 것. 근대가 그렇게 왔듯 권선징악 또한 굽이굽이 돌아온다는 것. 대로를 통해 단번에 달려오지 않지만, 또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광석화처럼 오기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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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뒤인 1988년 11월 23일, 백담사로 가기 전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두환은 "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태는 우리 민족사에 불행한 사건"이라고 규정한 뒤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과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는 전두환이 했던 발언 중 가장 ‘참회’에 가깝게 다가간 발언이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잘못을 규명하거나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은 그 발언을 온전한 ‘참회’나 ‘사과’로 볼 수는 없다.

그저 ‘현재의 나’가 무사히 살아남아 안녕을 누릴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광주를 피상적으로, 철저히 자기 위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응한 것은 그런 그의 근본적인 기질, 즉 ‘현재, 여기, 나’만 보고 사고하는 특성, 자신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둔감할 수 있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고려 대상이 단일한 한 사람, 오로지 ‘나’밖에 없는 전두환에게는 다른 요인에 대한 고민으로 속을 끓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용감하게 덤벼들어 사건을 만들고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전두환을 ‘나이브’하다고 평한 허화평의 안목은 정확했다. 오직 한 가지만을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인간은 타인들의 눈에 순수, 의리, 용맹, 카리스마 같은 가치의 상징으로, 동시에 단순, 무식, 잔인, 독선, 나이브함과 같은 무지성의 아이콘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고(혹은 중시한다고 대외적으로 무척 강조하고),

전두환은 당황했을 것이다. 한 국가의 정규군이 국민을 살상했다는 것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덮을 수 없는 대형 악재였다. 전두환은 알았을까. 자신의 무신경과 특유의 낙천성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사건을 추동했다는 것을.

공존하기 어려운 상반된 특성을 동시에 내보이는 이런 인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유형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키워드는 ‘가벼움’이다. 그의 90년 인생을 뒤쫓다 보면, 전두환의 내면에 어떤 막이 존재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내면의 일정 깊이 이하로 내려갈 수 없도록 만드는 단단한 막이 존재해, 그 내면의 소유자가 언제나 의식의 표면과 그 언저리에서만 맴돌게 했으리라는 상상을. 이 막의 기능으로, 특정 사건과 마주쳤을 때 전두환은 그 사건을 깊이 파고들지 않을 수 있었다. 핵심을 파고들어가 진상과 대면하며 괴로워하는 대신, 현상에 표면에 머물다가 내상을 입기 전에 철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자.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던 그의 인생 전반기의 세속적 영광, 정통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텨냈던 대통령 재임 기간의 모순적인 상황, 사과하지 않은 채 끝없이 국민에게 지탄받았던 33년간의 길고 기나긴 몰락은 모두 그의 일정한 기질에서 연유했다고. 전두환의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 특별한 가벼움이라고.

5공화국을 살았던 국민이 만끽했던 것은 어떠한 자유였는가? 배고픔에 포박된 상태로부터의 자유였다. 두둑해진 지갑을 들고 밤새 돌아다니며 유흥을 즐길 자유였다. 색채로 가득 찬 자극적인 스크린과 브라운관 화면을 보고, 외국에 나가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낯선 공간의 공기와 음식을 맛볼 자유였다. 한 마디로, ‘몸’ 혹은 ‘감각’과 관련된 자유였다.

이런 이미지는 먹고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여과 없이 전달된다. 현상의 배후에 있는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그를 파헤쳐 볼 만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이미지,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나라’가 정해놓은 규칙과 금기를 지키지 않으면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른다는 엄포가 사방에서 전해져 오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나라’로 보이는 이미지들에 순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자신이 국가 운영을 잘 해내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실력 있는 인재를 기용해 공동체가 잘 돌아가게 만들면 그 인재가 세운 공이 그대로 자신의 것이 된다는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발탁한 인재가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 얼굴과 다리가 되어 자신을 보호할 것이고, 훗날 단죄의 시간이 오면 자신의 일부가 된 이들이 세운 공로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면 될 것이었다.

그는 정통성이 없는 대통령이었기에 역설적으로, 경제와 같은 핵심 분야에 반드시 ‘실력 있는’ 인재를 써야 했던 것이다.

전두환은 각 분야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사람을 찾아내 자리에 앉힌 뒤 권한을 몽땅 위임하는 ‘통 큰’ 리더였다. 분야의 일인자를 찾아내 장관으로 임명한 뒤엔 차관 이하 그 부서 인재에 대한 인사권을 전부 그 장관에게 주었다. 하지만 정권 보위를 위한 자리, 이를테면 안기부장이나 내무부 장관(경찰 지휘권을 가진), 국방부 장관 같은 자리에는 철저히 철저히 측근들을 기용했다.

자신이 진정 떳떳하다고 생각했다면 길게 늘어지는 변명을 세 권이나 되는 책으로 만들어 출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쓴 회고록을 읽는 것은 뜻밖의 위로를 준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였던 독재자, 제게 잘못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 듯 보였던 독재자였지만 내면은 편치 않았구나. 오죽했으면 저렇게 시뻘겋게 속을 드러내 보이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이런 몇 가지 예시만 보아도, 정통성 없는 독재자의 존재가 한 국가의 국익에 얼마나 큰 손해를 초래하는지를 알 수 있다. 정통성 없는 지도자는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안보와 교역, 민생과 치안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이렇듯 조금 떨어져서 인생 전체를 놓고 조망해 보면,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던 무인 대통령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믿고 좇았던 군인, 가시적인 것 이면에 도사린 함의를 볼 지성이 없었던 쿠데타 주역 전두환이 만일 1979년으로 되돌아간다면, 그는 그때도 12·12를 일으킬까? 정상에 오르기 위해 저질렀던 일이 평생에 걸쳐 치러야 할 불안과 사천만 국민들로부터의 증오라는 죄과로 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래도 국민을 학살하고 권좌에 오를까?

그와 그의 가족이 느꼈을 불안과 억하심정을 생각해 보면 전두환이 2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감옥 밖에서 여생을 보낸 것이, 남은 생 내내 감옥에 머물며 모든 걸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뒤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보다 더 정교하고 강력한 단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의 주요 임무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내재한 다양한 욕망을 조율해 내는 일이다. 그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있고, 심지어 한 사람의 내부에도 상충하는 정반대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인은 누군가가 표방하는 말이 실제 그 사람이 욕망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언제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상대하는 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기민함도 장착해야 한다. 상대의 내면에 도사린 진짜 욕망을 알아야 그 욕망을 충족시켜 주거나, 부분적으로 충족시켜 주거나 아예 억누르도록 유도할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 선제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정치인 자신에게 내재된 다양한 욕망을 읽어내고 대면하는 능력이다. 제 안의 욕망을 읽어낼 줄 알아야 타인의 욕망도 읽어낼 수 있는 법이므로. 그런데 수많은 타인과 만나 그들의 욕망을 읽어내야 하는 정치인이 그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의 발생 원인을 정치인 자신에게서만 찾거나, 자신이 아닌 외부 요인들에서만 찾는다면, 그 정치인이 이끄는 공동체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정치인은 국가적·사회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문제라 명명하는 사람이기도 하기에, 엉뚱하게 문제를 설정할 경우 문제가 아닌 것이 문제로 명명되거나, 진정 문제로 삼아야 할 일을 전혀 문제로 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전두환은 자신과 다른 역사를 가진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식의 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전두환이 배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의 범위가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우로 한정된다는 것.

이 문제는 상상력의 차원에서 답을 찾으면 한결 이해하기 수월해진다. 전두환은 상상력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 그래서 내가 잘해주면 결국 그 결과가 내게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타인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낯선 생명체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인지하고 그의 희로애락을 떠올려 공명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나의 유한함을 직시한 사람만이 타인의 유한함을 알아보고 연민할 수 있는데, 자신의 결함과 마주 서서 정면으로 대결한 적이 없는 사람은 관성적으로, 그저 내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누군가 접근해 오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나서서 호감을 표하고 손을 내미는 편이었다. 백담사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분노하고 서운해했으면서도 노태우에게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했고, 재임 당시 그토록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용공 분자’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자신을 ‘전임 대통령’ 자격으로 초대했을 때 반색하며 청와대로 달려갔다. 자신을 감옥으로 보낸 김영삼의 부고를 들었을 때도 장례식장에 가서 조의를 표했다.
이후 전두환은 틈날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가 가장 좋았다’고 회고하며 전임 대통령으로서 초대받고 대접받은 것에 대한 기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회고록에서 박철언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권위를 세우려 들고 독선적인 기분에 빠지는 듯하다. 때문에 충격적 대응이나 과격한 조치를 지시하는 일이 가끔 일어난다. 이런 때 핵심 참모들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당장 확정 집행될 일이 아닌 경우에는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치밀하게 준비하는 자세를 보이고, 대통령도 차츰 장·단점, 문제점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몇 차례 요약·정리·보고하여 결국 대통령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향성이 강한 인물은 사람을 모으고, 설득하고,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외향형 친구와 가까이하며 그 친구가 쟁취해 낸 기회와 그에 따른 인맥을 공유하고 싶어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 친구의 생각 없음과 사려 깊지 못함을 비판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직 법리로만 따져 자신을 변호하는 220페이지의 서술에서, 전두환이 그때껏 해왔고 재판이 끝난 뒤에도 반복적으로 내보이게 될 그의 내면의 핵심 특성 중 하나가 엑기스 형태로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기’이다.

대한민국을 겉과 속이 다른 공동체로 파악한 건 김대중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은 서구에서 몇백 년 동안 숙성된 제도를 갑작스럽게 이식해 와야 했던 아시아 변방의 분단국, 분단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전쟁을 겪은 신생독립국가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이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 사상(왕조 시대의 수직적 신분제와 만민평등사상에 바탕한 민주주의라는) 사이에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서울의 봄’이라 불렸던 1980년 5월, 재야 지도자들이 "모든 군인들은 무기를 놓고 병영을 나와라. 모든 노동자들은 해머를 놓고 공장을 떠나라. 모든 상인들은 문을 닫고 철시하라. 모든 국민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장충단공원으로 모여라."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려 했을 때 김대중은 펄쩍 뛰며 말렸다. 그렇게 과격한 성명을 내면 혼란을 원하지 않는 대다수 국민이 돌아설 테고, 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신군부에게 무력을 동원할 빌미를 주는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이유였다. 결국 재야인사들은 기존의 과격한 주장을 접고 "계엄령 즉시 해제", "전두환·신현확 퇴진"으로 수정해 성명서를 냈고, 신군부에게 빌미를 주지 않은 채 무사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변화 속도에 대한 믿음의 차이’라는 말이 있다. 보수는 사회의 변화가 ‘제도 신설’에 의해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으니 기존의 사회적 관례를 급하게 바꾸기보다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살펴가며 차근차근 바꾸자고 주장하고, 진보는 그렇게 늑장을 부리다가는 기득권 세력의 현상 유지 기도 때문에 영원히 바뀌지 않을 테니 제도를 바꾸어 단번에 확연하고 큰 변화를 이루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인간의 내면이 선이나 악, 둘 중 한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 복잡한 인간 심성을 고려해 제도적 강제를 실현하는 데 신중을 기하자고 하는 반면, 진보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정해서 이끌지 않으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층의 내면에 있는 악이 승리해 사회가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고 전망한다.

다른 반대 진영 정치인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격한 주장을 펼쳐 대중들의 신망을 잃는 일이 빈번했는데, 김대중은 그렇지 않았다. 김대중은 올바른 말을 하는 행위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 그 말이 현실에서 어떤 파급력을 지닐지 면밀히 짚어보고 치밀하게 준비한 뒤에 말을 내놓았다.

강인한 외피를 두른 악인의 내부에 웅크린 작고 쭈글쭈글한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량을 갖게 된 자는 더 이상 상대를 미워할 수 없게 되는 법이므로.

전두환을 향한 단죄와 용서가 이처럼 최고 결정권자의 사적 동기로 가해졌다는 사실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가 아직도 특권층의 사회이며, 결정권을 쥔 소수 인물의 사적 동기에 따라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단계를 넘어갔음에도 그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에게 가해진 마지막 단죄의 철퇴는 광주지방법원으로부터 왔다. 회고록에 5·18 당시 헬기 사격 목격을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라고 써서 허위사실유포죄로 고발당한 것이다. 당시 전두환은 87세였다. 죽음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행적을 세세히 기록해 남기길 원했다. 진실에 바탕한 것이 아니라 듣기 좋게 윤색된 버전으로. 후대에 남기는 회고록에까지 거짓말을 남발했다는 것은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둔 순간에까지 진실을 침소봉대(
針小棒大)할 수 있다 여겼음을 보여준다. 퇴임 후 30여 년이 흘렀건만, 크고 작은 수많은 매질을 당했건만, 전두환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조악한 거짓말로 역사의 심판을 비껴갈 수 있다고 믿었다.

‘대통령 부인’은 그러한 여성의 자리를 모두 모아 집대성하고 상징성을 얹어 부풀려 놓은 자리다. 공적인 책임이 없지만 실질적인 책임이 막대하고, 일에 대한 결정권이 없지만 일이 잘못될 경우 우회로를 통해 책임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책임과 인과관계가 모두 비공식적인 경로를 따르기 때문에, 비판과 단죄도 비공식적이고 감정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통로를 통해 온다. 바꿔 말하면,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는 그 자리에 앉은 개인의 대처 방식에 따라 성격이 판이하게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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