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철학하다 - 삶은 어떻게 글이 되고, 글은 어떻게 철학이 되는가
이남훈 지음 / 지음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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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소크라테스는 죽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쳤을 시기에 철학이 살고 있었다. 모든 것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바뀌면서 철학에서 종교가 빠져나갔다. 그다음에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독립했다. 또 그다음에는……. 그렇게 많은 분야가 세분화되어 철학을 빠져나가자 지금의 철학이 되었다.

그런데 철학은 여전히 거대한 몸집으로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정치 철학, 과학 철학, 미학 등이라는 이름으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학은 너무 많은 단어를 의미했다. 분과도 많을뿐더러 아주 딥deep하고 구역질 나는 철학부터 자기계발식의 느낌적인 느낌이 있는 철학까지 포괄했다. 이 책의 제목에 매료되었으면서도 '철학'이라는 단어에 약간 겁을 먹은 예비 독자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이 책 제목. 달리 말하자면 글쓰기를 향한 마음가짐이나 태도라는 뜻이다.

이름 들으면 아는 철학자들을 많이 언급하긴 한다. 칸트, 데카르트, 푸코, 비트겐슈타인, 카프카에 손택까지. 그런데 글의 구조는 항상 엇비슷하고 난도는 그리 높지 않다. 먼저 글쓰기에 관한 저자 자신의 태도를 말하고, 그가 겪은 경험이나 철학자 및 문인 이야기로 뒷받침한다. 글쓰기는 특정한 사안을 해석하는 일이다. 타인의 피드백을 두려워 말라. 글쓰기에는 톤이 있고 그걸 인지한 채로 써라. 철학과 철학자 이름을 섬기며 거창한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정돈 아니다.

그렇지만 꼭 거창해야만 좋은 것도 아니다. 나도 글쓰기 책을 적게 읽은 건 아니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글쓰기 책보다 어려운 책은 작법서와 독서법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좋은 예시를 몇 가지 댈 수 있는데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니 요새 신간으로 나온 제임스 우드 정도만 언급하겠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너무 어렵고 문학적 인풋이 많아야 한다. 제임스 우드는 영어를 쓰고 영문학의 바탕 위에 선 사람이기에 가벼운 수준으로 영문학 좀 읽었다고 이해될 만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이런 책도 세상에 꼭 있어야 한다. 이 바쁜 현대 사회에 저자 이 제정신 아닌 사람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계속 붙잡게 하기보다는 비슷한 짜임새로 한 꼭지씩 쉽게 써서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쓰려는 사람보다는 이미 글을 어느 정도는 쓴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전자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후자에게는,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 이 책에 관심을 보이는 대다수의 사람은 자기의 글쓰기 철학 즉 태도와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나 또한 "타임 루프에 갇힌 사람처럼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면 또다시 '백지'라는 무인도의 조난자로 떨어져 있"는(46쪽) 기분을 자주 느낀다. 에세이 같은 역할을 하고 실제로도 많이 유사하다. 책 좀 읽는다는 독자들은 에세이는 개나 소나 쓴다며 무시하지만(나 또한 그러함) 이런 장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의외의 효과도 있다. 인용한 문장이 주옥 같아서(적재적소 인용이 아니라 다소 끼워 맞추기식 같은 점은 없잖아 있다) 한 권의 독서를 통해 여러 권으로 뻗어 나가게 한다.


모든 책에는 그에 맞는 독자가 있다. 도서관학 제5 법칙 중 하나이자 내 독서 철학이다.

이 도서는 출판사 지음미디어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았으나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렇지 않나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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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왜곡의 역사 - 증보판
바트 어만 지음, 민경식 옮김 / 갈라파고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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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을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책이 몇 종 있다. 그래서 북커버를 씌우고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강렬한 제목이다. 성경 왜곡의 역사.

 

한국에서 기독교인 이미지는 같은 기독교인 외에는 별로 좋지 않다. 안 좋은 이유도, 여러 문제도 있고,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물론 교회가 하는 좋은 일도 안다. 이 책의 내용에 관해서 말하자면 기독교인은 성경 구절을 깊이 믿어서 타인의 삶에도 적용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성경 말씀이라는 게 여러 버전이라면? 정말 중요하고 감동적인 내용이 다른 공신력 있는 필사본엔 없는 내용이라면? 현재 우리가 보는 성경은 원본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도 원본이 쓰이고 몇 세기가 지난 것이다. 로마의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교인부터 인쇄 문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많은 사람이 필사로 옮겼다.

 

이게 오류가 안 나고 배기나?



 

이 책은 그런 내용이다. 베끼고, 베끼고, 베끼면서 오류가 난 과정과 신약성서 사본을 연구한 역사. 의도치 않은 오류도 있지만, 필사자가 의도한 오류도 있다. 그게 항상 나쁘다는 건 아니다. 자기가 보고 베끼는 중인 본문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그리스도교 내에서의 논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역시 글(텍스트)은 당대의 맥락(콘텍스트)과 함께 읽어야 한다.

 

원제에서는 Misquoting이라는 단어를 썼다. 말이나 글을 잘못 인용했다는 뜻이다. 왜곡은 사실과 다르게 혹은 틀리게 해석했다는 뜻인데, 본문 내용을 읽으니 잘못 인용과 잘못 해석 둘 다 맞다.

 

저자 바트 어만은 복음주의적 개신교 환경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의 이웃은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성직자였다. 어만은 강렬한 인상을 받고 신학을 공부했다. 성경은 완전하고 오류가 없으며 이 문장들을 잘 고수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신약성서 본문비평학 공부를 지속하면서 그가 본 성경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지도 교수가 그 경전을 작성한 이의 실수였을 거라고 말한다거나, 어만이 신학 외에도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 보인 정도의 유연함을 지닐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학도적 면모가 드러나기도 했다.



 

어만의 개인사를 생각하면 오직 신앙인만이 관심을 가질 주제라는 인상은 사라지게 된다. 비단 성경뿐이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그만의 경전을 하나 정도는 갖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제인 오스틴과 톨스토이의 소설인데, 종종 다른 책을 읽다가 그녀를 향한 비판을 마주한다. 워낙 대단한 양반들이니 비판이 좀처럼 없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놀란다.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를 읽으며 이 책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 김진호의 성서와 동성애(오월의봄, 2020)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로 인용하는 성경 구절을 당대의 역사적 맥락과 함께 분석한다. 이 두 책으로 나는 내 경전을 맹신하는 경향을 조금 덜어내게 되었다.

 

나의 경전에 오류가 있음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내가 그 경전을 더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항상 달콤한 것만 먹을 수는 없다. 때로는 쓴 약도 먹어야 병이 낫는다. 유튜브 알고리즘과 같다. 내 생각에 동조하는 것만 들으면 사람이 망가진다. 그건 내 경전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았으나, 출퇴근 통합 3시간 동안 연필을 들고 다니며 잘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성서를 거짓된 우상 또는 전능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떠받들지 않고,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서문, 29p)







그래서 진짜 시비 걸렸는가: 집에서 걸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 설명함

성서를 거짓된 우상 또는 전능한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떠받들지 않고,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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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세트 - 전3권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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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두 권씩 나오는군요! 잘 읽겠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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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아킨토스 고블 씬 북 시리즈
박애진 지음 / 고블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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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로봇 이야기 좀 그만 써라. 대체로 천편일률적인데 개허접이기까지 해서 그렇다. 요즘 문학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거냐?


그런데 이 섹스 로봇 이야기 히아킨토스는 이번 SF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배경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안드로이드인 제로델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한 공작을 성추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가 인간인지 혹은 안드로이드에 관해 의견이 분분하다. 어느 쪽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은 성직자 카이유와 신부의 시선을 따라간다. 신부는 제로델을 안드로이드라고 보는 사법대신을 시작으로 인간으로 보는 여러 귀족 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제로델이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만인의 연인으로 생각하며 사랑을 주었고, 같은 인간 남성에게는 없었던 위안과 존중을 얻었노라고 했다. 소설이 진행되며 카이유와 신부는 자신의 모습 또한 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사랑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인간이 행하기만 한다면 그걸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인간은 뭐지? 제로델의 이음새 없는 피부는 감각을 느끼고, 그의 몸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것과 똑같이 만들어졌다. 그의 살을 들어내면 나처럼 정맥과 동맥이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하마노 지히로의 성스러운 동물성애자가 떠올랐다. 말 그대로 동물과 성애를 나누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내용이다. 책에 나온 동물성애자들은 어떤 인간보다 나았다. 파트너 동물을 나와 동등한 존재, 생명체로 존중하는 모습은 순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감상은 SF적 요소보다는 인간관계에서의 존중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로봇이 등장하는 SF 소설은 결국 인간을 파헤치는, 누구보다 인간을 고찰하는 장르가 아닐까? 여행이 내가 사는 곳을 더 잘 알게 해 주듯이.


사람들은 상대의 의사나 기쁨을 얼마나 생각할까? 소설에서 제로델은 인간이라고 하는 귀족 부인들은 기존에 남성과 구축한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했다. 여자의 행동반경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는 남자, 외도하는 남자, 자기의 점잖음만 중요하고 상대가 기쁨을 느끼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남자, 왜 외모 관리 안 하냐고 묻는 남자, 술만 마시면 개가 되어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 인터넷 스크롤 한 번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이들이 그 귀족 부인들을 제로델만큼 존중했을까? 그런데 귀족 부인들은 제로델을 존중했을까?



소설은 작품 내에서 구체적인 사례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에 무엇이 바람직하고 그렇지 않다는 가치판단을 하는 대신 증언을 전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읽으며 어렴풋한 느낌을 받는 부분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렇다. 독자의 몫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는 무엇인지도 답을 주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기는 하나 현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도 많이 언급된다. 동성애, 성적 지향을 스스로 택하는 것(제로델은 남자라는 젠더를 택했으나 남성적인 외모는 선호하지 않은 듯하다, 젠더퀴어로 해석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전통적인 가족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주장,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사법의 보수적인 태도와 편견, 남성과의 성 경험에서 남성과 달리 만족을 얻지 못하는 여성(왜 여성은 사회주의 사회에서 더 나은 섹스를 하는가라는 책이 떠오른다.) 모두 우리의 시대에 시의성이 있는 문제이다. 당연히 이에 관해서도 박애진은 답하지 않는다.



나는 SF 독자가 아니지만, 이 책은 중근세 유럽을 위시하는 신분제, 그리고 마리 드 라파예트의 클레브 공작부인같은 도입부 덕에 쉽게 안착할 수 있었다. 세계관 상으로는 더 활용할 만한 특징이 적지 않다. 인간은 여러 행성에서 살고, 행성 간의 전쟁이 있었고, 겉모습을 바꾸는 일이 무척 수월하고 등등. 그러나 작품에서는 이런 세계관적 특징이 많이 활용되지 못한 듯하다. SF라는 장르에 조금 더 걸맞은 배경이 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 독자로서는 이 점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SF를 잘 읽지 않는 독자에게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고전, 사극, 심리 소설, 인간관계를 파고드는 소설을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SF 입문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소설이 던진 질문에 관해 오래오래 살면서 나만의 답을 구하자고도 제안하고 싶다.


존중은 평생의 과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리뷰를 대가로 제공 받았습니다. 즐거운 만남이었습니다. 좋은 기회 감사합니다.











죄의식이 들어올 겨를조차 없었던 촉박한 시간, 찰나이자 영원으로 타오르던 전신의 감각들, 그토록 커다란 위안, 가늠할 길 없던 기쁨. 그건 죄일 수 없었다. 그 밤, 그 절망적인 밤, 끝없던 시신들의 밤, 그를 구원한 건 인간이었다. 사랑이었다. 다만 사랑이었다. - P137

많은 경우 ‘공정하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마라, 반대하지 마라,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를 포장하는 데 쓰였다. 중립이 선택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으로 그 또한 선택이고 결정이듯, 때로 가장 비겁한 형태의 회피이듯, 원뜻 그대로의 공정 또한 오직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어느 결정을 공정하게 보느냐는 개개인의 통찰력과 사유의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이었다. - P188

자신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 P227

방대한 지식을 가진 존재이나 지식의 양이 인격을 결정짓지 않는다. 인격은 체험하는 삶에서 만들어진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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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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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 명확한 답을 기대하고 읽은 책. 그래서 소비할 거냐, 말 거냐? 그렇지만 완독 후에는 그저 소비자 정체성으로 불매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싶고, 작품을 향한 내 사랑만은 부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각자 자기만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 (도서관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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