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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빛의 노래
유병찬 지음 / 만인사 / 2015년 8월
평점 :
가끔,
여행가서 와이프가 풍경 사진을 찍을라치면
"블로그에 널린 게 풍경사진인데 뭐하러 찍나.
우리가 찍은 사진보다 인터넷에 훨씬 이쁜 거 널맀데이~
걍 인증샷이나 찍는 게 추억에도 남는거지" 라고
대단한 걸 발견한 듯이 나무라곤 했다.
물론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놓고 보자면
엄연히 분야가 나뉘어져 있고,
분야마다 고유의 깊이와 철학이 있으니
섣불리 우위를 평가한다는 건 위험하다는 전제를 깔고
단지 개인 취향만을 이야기하자면 말이다.
이를테면
풍경은 모두의 대상이라 그 사진이 그 사진이니 언제든지 구할 수 있고
인물은 우리만의 특별한 피사체라는 점에서 지금 찍지 않으면
영원히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하는 하는 소리다.
이렇듯
사진을 찍는 것과 감상하는 것, 그리고 포토에세이라는 분야에
난 전혀 문외한이다.
이 책을 유레카님에게서 선물받기 전까지는 말이다.!!(입문했다는 말이지요)
<사진 예술은 참으로 모호하다. 안개 속에 숨겨진 길을 걸어가는 듯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암중모색, 어두움 속에서 더듬듯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같은 깨달음
을 이 책이 전해줄 거라고 믿는다.>-7쪽
추천의 글에서
사진의 대상은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같은 깨달음"이라고 했다.
아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내 안의 깨달음이었다.
여태까지 사진이라곤 내 얼굴사진 밖에 몰랐다.
못나게 나오면 누가 볼까봐 "삭제하시겠습니까"에 번개같이 "확인"을 눌러대는 꼴이란..ㅎㅎ
뭐 어찌보면 그것도 깨달음의 일종이겠거니 ^^;;
이 책은
1. 바다가 보내는 기별
2. 우울도 예술이야
3. 빛에게 안길 수 있다면
4. 산내면에는 별다방이 있다.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마다 마음을 울린 한 편씩을 꼽아본다.
▶ 침묵에 대한 저항
<소리 질러!
죽어도 소리 지르는 데, 산 자들 왜 침묵하지? >-34쪽
<마지막 순간의 숨막힌 외침, 그 소리마저 박제되었다>-40쪽
제목과 사진, 그리고 산 자들 왜 침묵하지? 란 글이 절묘하다.
▶ 점찍기
가장 가슴을 울리게 한 문장입니다.
< '그대여, 무얼보는가'라며 산은 나에게 묻는다
헐떡거리는 숨찬 가슴에 산이 나에게 주는 질문을
기꺼이 받아 들었다.
점 하나 찍고자 한다. 그것도 눈물겹도록,
그대여, 무슨 점을 원하는가?
잠시 쉬어갈 쉼점 찍고
생의 마무리도 근사하게 마침점도 찍고
내 삶의 시작과 끝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음점도 찍고
찍어, 그런 점, 점, 점을 찍겠다는 거였다.
(........)
산에게 안기어 산의 점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잘남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학식이 높은 자도, 무식쟁이도
모든 게 무효이자 산의 점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58쪽, 60쪽
▶ 빛에게 안길 수 있다면
<잠시 잠깐의 짧은 시간과 빛, 그리고 그림자.
여기에 삶이란 것과 포옹해야 한다. 안을 수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
좀 더 가까이 끌어 안아야겠다.
자신의 시간과 빛을 품는다는 것. 그래서 사진을 찍게 된다.
사랑치고 품지 못하는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79쪽
빛이 그림자를 품어야 함을 이야기하며
사랑 또한 품고 싶은 대상만 품는 게 사랑이 아니다라는,
깜빡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랑의 포용성에 다시 한번 제 마음을 가다듬게 된 이야기였어요.
▶ 산내면에는 별다방이 있다.
페티쉬 아니구요 ㅎㅎ
(작가님 궁금합니다. 이 사진은 어떻게 찍으셨는지 흐흐)
<중년 나이가 된 늙은 총각들에게는 아무래도 별다방은 하룻밤
거나하게 회포를 풀고 쌓인 욕정이라도 놔 버리며 해소의 구석진 농밀한
곳이 아니었겠는가 싶었다.
그런 노총각 두 서너 명 들어 오면 다방 큰 마담이 큰 소리로 외칠지도 모른다
"김양아, 오늘 일찍 셔터 내려라">
빵 터진 곳이다. ㅎㅎ
재미 있는 이야기가 많으니
기대하셔도 좋으리라~
조정래 작가가 민족과 역사를 논하다가
남녀간의 붕가붕가 장면을 맛깔나게 풀어나가는 폼새가 비슷하기도 하고,
한껏 주름진 마담의 천연덕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온 내 누이같은 꽃.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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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사진에 대한 애착이 담긴 스토리를 알기에,
책이 나에게로 온 특별한 만남이 있었기에
더욱 더 가슴속에 잘 스며든 책이다.
특히나,
사진이 사진만으로 끝나는 것에 반항하여
사진이 단지 사진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위하여
풍부한 독서와 글쓰기를 실천하여
사유를 통해서 시선을 넓히고 관점을 깊이 가져갔다는 작가의 말에
오히려
독자로서 감사드리게 되는 책이었다.
작가의 고뇌 덕분에
문외한을 품은 빛의 책이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