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지음, 한기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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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이다

 

이 한 문장에 1984의 사상이 다 담겨있다!

 

작금의 세상을 보라. 오늘 실제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에 가서 QR코드를 접했다. 접종자와 미접종자를 가리는 소리가 들렸다. '접종자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한것 같다. 입구 초입에 줄을 선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다 나와 버렸다. 그렇다. 나는 미접종자이다.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건 낙인 찍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듯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분명 이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인데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며 더 화가 났다. 개인의 자유를 지금의 정부는 독재 형식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세뇌하고 길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분명 이 글을 읽는 자들 가운데 접종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걸 왜 하지 않느냐며 이미 비딱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1984가 치료약이 되면 좋으련만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오미크론(감기 수준)에 대해 부스터샷에 대해 추가 접종은 오히려 면역성을 떨어뜨린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미생물학 및 면역학과장인 Ehud Qimron 교수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공개 서한이 발표 되었다. 한 마디로 "보건부, 실패를 인정할 때"라는 말을 했다.(https://www.mako.co.il/news-columns/2022_q1/Article-dfd99ca599e2e71026.htm)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는 동료들을 비방하고, 국민을 적대시하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담론을 양극화시켰습니다. 과학적 근거 없이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중의 적으로, 질병을 퍼뜨리는 사람으로 낙인찍었습니다. 당신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의학적 선택을 내릴 권리를 부정하고 사람들을 차별하는 가혹한 정책을 펼칩니다. 역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텔아비브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Udi Qimron / https://cafe.naver.com/querdenkenkorea/24986

 

 

분명한 빅브라더의 세계가 도래 했다. 백신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불나방이 불에 달려들듯 사람들의 정신은 이미 생각(판단) 기능을 상실했다. 영화 아일랜드(SF 2005)를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왜 국가나 권력자를 믿으면 안되는지를 명확하게 알 것이다.

 

 

빅브라더란, 1984에서 모든 국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전지전능한 가상의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일반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사회를 감시·통제하는 관리권력 또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말로, '감시자'를 지칭하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다."(시사상식사전)

 

 

조지 오웰의 ‘1984은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국민에 대한 통제와 독재를 풍자한 소설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과 더불어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정부의 감시 카메라 설치나 개인정보 사용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자주 쓰는 말인 '빅 브라더(Big Brother)'는 바로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최고 권력자의 호칭이다. 한 기사에서 보았는데 '오웰리언(Orwellian전체주의적인)'들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처럼 정부가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가 1984년에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은 코로나19 유행으로 대한민국과 중국에서 몇몇 나라에서 현실이 됐다. 중국 공안은 이미 2020년도 초에 각 사람의 핸드폰에 부착된 QR코드를 검사해 춘절에 우한을 떠나 북경이나 상하이 등지에 온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봉쇄된 우한으로 돌려보냈다.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있는 후베이 출신들이나 우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강제 격리다. 좋은 말로 '거리두기'.

 

 

그러나 엄연한 통제사회이며 사람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감시 받는 사회 체제이다.

 

중국은 아파트 단지를 드나드는 택시기사나 음식배달원은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자신의 휴대폰 속 수이션마(隨申碼)’를 제시하고 있다. 수이션마란 개인별 휴대폰 QR코드를 말한다. 개인별 진료기록, 위치정보 및 통신내역, 결제정보 등을 종합 반영해 자신의 휴대폰 QR코드 색깔로 위험여부를 표시해주는 장치인데 어떤면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감시되고 있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그러한 내용들을 이미 조지오웰을 통해 1984년에 예견되었다. 그는 선각자와 같으며 이 시대를 꿰뚫어보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에 대한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작년 10월경 조지 오웰 산문선을 보면서 오웰이란 작가가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1984년은 섬찟할 정도로 현재의 세계를 보여주는 안경이 되어 주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트럼프의 취임식 전후로 조지오웰 소설 1984판매량이 무려 9500% 증가했다고 한다. 왜곡된 보도들이 즐비함으로 미디어 정치에 놀아나는 세상을 보여준 대표적인 형태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라 대선도 보면 네거티브 전쟁을 하고 있다. 사실과 거짓이 섞인 자료와 유트브가 판을 치고 있다. 이미 우리는 미디어 세상에 의해 조정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실을 말해도 진실을 믿지 못하고, 거짓을 말해도 진실인 것처럼 생각되는 사회 속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매우 걱정이 된다.

 

 

책 안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이러하다.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브라더'를 내세워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소설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 도청장치를 이용하여 대중에게 이데올로기를 강요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러한 절대 권력에 대항하여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지만, 호된 고문 끝에 결국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말을 하며 자신과의 투쟁을 끝내게 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 주인공에게 일어났다.

 

 

이 책 3부로 바로 가서 보면 윈스턴은 경찰에게 잡혀간다. 그건 빅브라더가 금지하는 생각을 하고, 지하 투쟁단체에 가입하고, 섹스로 쾌락까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윈스턴은 끔찍한 고문을 받는다. 고문의 과정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3부 쳅터 2에 그 내용들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모든 권력자들을 증오하며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현실에도 보면 죄를 짓지 않았는데 경찰에 의한 강제적 자백으로 인해 죄인이 되고 죽일놈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 당사자의 고통과 잃어버린 시간들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전혀 보상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정말 최악의 고통이다. 이런 현실이 또 우리 삶에 보편적으로 실제 나타날까봐 매우 두렵다. 그렇다. 이 책에서 고문의 목적은 빅브라더를 의심하는 마지막 인간의 사상을 개조하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울부짖던 윈스턴은 결국 당이 원하는 것에 굴복하고 만다. 빅브라더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마음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고 믿던 주인공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를 처형하지 않아. 우리는 그를 개조하고 그의 내면을 포착하고, 그를 다시 만드는 거야. 그에게서 모든 사악함과 환상을 불태우는 거야. 우린 그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는 거야. 그저 외관상이 아니고 진심으로, 마음과 영혼을 다해서 그렇게 하도록 하는 거라고. 죽이기 전에 그를 우리 일원으로 만드는 거지. 우리는 이 세상 어디에든 잘못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아무리 은밀하고 무력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일세. 죽는 그 순간까지도 어떤 일탈도 허용할 수 없단 말이야. [...] 예전 전제 정치 시절의 명령은 '하지 말라'였네. 전체주의 명령은 '해야 한다'였지. 우리가 내리는 명령은 '그렇게 되거라'라는 것일세. 우리가 이곳에 데려운 어떠 사람도 우리에게 맞서지 못하네. 모두가 깨끗하게 세뇌되거든. 자네가 한때 무죄라고 여긴 저 세 명의 비참한 배신자들, 존스, 애런슨, 리더포드의 경우에도 결국 우리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지. [...] 나는 그들이 차츰차츰 지쳐서 흐느껴 울고 굽신거리고 눈물을 흘리는 걸 보았네. 결국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라 속죄로 끝맺었지. 우리가 심문을 마쳤을 때쯤엔 그들은 그저 빈껍데기만 남게 됐다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후회와 빅 브라더에 대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 _본문 p.389-390

 

 

자네는 두 번 다시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네 안의 모든 것이 죽어 버릴 테니까. 자네는 두 번 다시 사랑을 하거나 우정을 맛보거나 삶의 기쁨을 누리거나 웃거나 호기심을 느끼거나 용기를 낸다거나 정직성 같은 것을 갖지 못하게 될 거야. 자넨 텅 빈 인간이 될 거야. 우린 자네를 쥐어짜서 속을 비울 테고, 그런 다음 우리 것으로 자네의 속을 채울 걸세.” _본문 p.392

 

위의 내용은 너무나, 너무나 무서운 내용이다. 등골이 오싹하며 마치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생각하듯 당장에라도 가서 그들을 죽여 그들의 독재를 끝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의 주인공 마저 결국 증오의 대상인 빅브라더를 사랑함으로 끝맺게 되는데 가슴 한 켠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이 세상의 모든 권력에 대한 저항을 꿈꾸는 '아나키즘'이 떠오른다.

 

그는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콧수염 아래 숨겨진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40년이 걸렸다. , 모질고도 부질없는 오해였다! , 저 애정 어린 품속을 벗어나 고집스럽고 아집에 찬 유형의 삶을 살았다니! 술 냄새가 배인 두 줄의 눈물이 콧날 양옆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만사가 다 괜찮았다. 이제 투쟁의 시간은 끝났다.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_본문 p.456

 

마지막 말이 이렇게도 씁쓸한 것은 뭘까? 그의 마지막 말은 결국 세뇌된 존재의 외침인가? 투쟁의 시간은 끝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아마도 두 가지를 말하지 않나 싶다. 죽음으로서 이런 악의 세계에 벗어났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말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공산당과 같은 빅브라더 사회에 살고 싶지 않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개인의 주관성을 잃어버리고 사회성과 군중심리에 함몰되어 개인의 가진 자유마저 분명 통제되고 그 당들이 원하는대로 살고 있는데 이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말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 인도에서 영국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명문 학교인 웰링턴과 이튼학교를 졸업했는데 이튼에서 그를 가르친 교사 중에 그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도 있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하는 대신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당시 버마로 건너가 인도 제국 경찰의 부지휘관으로 근무했다. 여기서 그는 제국주의에 혐오를 느껴 1927년 영국으로 휴가를 나오면서 그만두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42세가 되던 1945년에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그는 펴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큰 명성과 함께 경제적 안정도 얻게 된다. 그러나 그해 아내를 잃고 자신의 지병인 폐결핵도 악화돼 요양과 입원을 거듭하는 가운데 고통과 불행 속에 마지막 작품이자 명작인 ‘1984’를 쓰게 된다. 오웰이 사망하기 5개월 전 출간된 이 소설은 이렇게 디스토피아 소설의 전형이 되었다. 이 책은 전체주의 권력의 생리에 대해 필사적인 경고를 담은 셈이다. 두 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당이 개인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스탈린주의 치하의 소련에서 가져왔다. 정확히 말해서 오웰은 전체주의를 경계하고 부패한 사회주의를 비판한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그가 글을 쓰던 시기는 세기적 대공황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발호한 시기와 일치하며 사회주의 수많은 갈래로 나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의 확립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였다. 그는 파시즘의 전체주의, 압제적 자본주의보다 오도된 사회주의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그 자신이 '최후의 경고'라고 말했던 1984였다.

 

 

죽기 얼마 전 병상에서 가진 BBC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나직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현재 세계가 빠져들고 있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결코 이 경고를 우습게 들으면 안 될 것이다.

 

 

코로나 19는 그런 무서운 세상이 도래할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 국민들은 정부와 이상한 비전문가에 의해 세뇌된것마냥 '백신 찬양자'가 되어 버렸고, 20세 이하 코로나 사망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통계가 나왔는데(혹 사망자가 있다면 그 사망자의 실제 죽음은 정부가 말하는 코로나 환자가 아닌 다른 병에 의한 병일 것이다. 물론 백신 추종자들은 그걸 굳이 믿으려 하지 않지만...그럴 때는 통계만이라도 봐라. 아이들은 맞지 않아도 충분히 지나가는 감기정도로 끝나 버린다. 지인 중에 코로나 확진자를 보았다. 격리 시설에 갔지만 코로나 치료에 대한 약은 없었고 특히 퇴실 때에 PCR 검사 조차 없이 돌려 보냈다. 즉 시간이 되면 없어지는 병이다.) 자녀들에게 백신을 맞추지 못해 안달이 나버렸다. 언제 정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고 TV에서 말하는 것은 뭐든지 믿어 버리는 형국이 되어 버렸나. 다른 전문가들(이왕재 교수, 함익병 원장 등)의 말은 전혀 귀담아 듣지 않고 모든 것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며 이미 1984년은 우리 사회 현실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다시금 정독하고 봐야 될 책으로서 나 또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도서 100안에 집어 넣고자 한다. 아직도 순전하게 정부가 우리의 삶을 지켜주며 안전하게 해줄거라고 믿는가?

 

 

2+2=4인가?

 

아니면

 

2+2=5인가?

 

여기에 대해 바르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살아 있다고 하지만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의 한 문장

 

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뭔가 하나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항하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무리가 여기저기에 생기고……. 작은 무리들이 한데 뭉쳐서 점차 그 수가 늘어난다면, 나아가 얼마간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다음 세대가 우리가 떠난 그 자리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p.240

 

 

"그들은 당신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지 못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여기서 자네에게 일어나는 일은 '영원히' 계속될 걸세." 오브라이언은 그렇게 말했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자신이 한 행동에서 회복될 수는 없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죽임을 당했다. 불태워지고 마비되고 말았다. p.446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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