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의 유토피아 - 왜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EBS 오늘 읽는 클래식
연효숙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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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과거부터 이상 세계를 꿈꾸며 얘기를 해왔다. 『유토피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언가 모를 낙원과 같은 세계가 그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우 토포스(ou topos)’라는 그리스어에 유래했다. 우(ou)는 ‘없다’라는 뜻이고, 토포스(topos)는 ‘장소’를 뜻하는 말로, 원래 의미는 nowhere, 즉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유토피아는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고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이다.

한 번은 고전영화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 37년)'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할리우드의 거장이었던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 티벳지역에 숨겨진 유토피아 세상인 샹그릴라(Shangri- ra)라는 장소를 보게 되었다. 지상 낙원으로 불리는 곳으로 늙지도 않고 평생 따뜻한 기후만이 지속되는 곳이며, 굶지 않아도 되며 매일 음식이 풍족하며 깨끗한 물이 있고 평화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곳으로서 어떤 분의 말처럼 아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전쟁과 가난의 공포를 벗어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이상향을 그려놓은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거기에다 동양적인 신비감과 라마교의 종교적 신비감까지 가미한 세상을 그려 놓음으로 실제 많은 이들이 영화로 인해 이곳을 찾으려고 네팔,인도,티벳 등지를 뒤졌지만 탐험가들은 영화 속에서 묘사하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이는 종교를 통해 낙원을 이미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저자는 어디엔가 있을 환상의 나라를 쫓기 보다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유토피아를 스스로 만들어보도록 채근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코로나 19가 세상을 암흑 가운데로 내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악화된 경제와 치솟는 물가, 기후위기, 국가 간 분쟁, 빈부 격차, 불안한 정치 현실 등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현실을 이겨내기는 커녕 사회 전체를 더 암울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모어는 단순히 철없이 이상적으로만 꿈꾸는 비현실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였다. 개인의 행복을 고민하고, 결혼과 안락한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교육과 생업을 논의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 평등, 도덕, 복지 제도, 경제 체제가 얼마나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주장한다. 또한 유토피아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새롭게 생각하며, 종교의 자유에 대해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고, 공공의 이익이 잘 보장되는 공유제에 입각한 정의 사회의 모델을 근사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독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종교와 공유제이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동사회를 추구한다.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종교를 택할 수 있으나 중세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로마 사회에서 탄압을 받으며 성장한 기독교가 중세 사회에서 국교로 정해지면서 기독교 외에 종교는 이단이 되었다. 종교 또한 힘과 권력이 생기면 썩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되면서 부패했다. 모어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

섬 전체 안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도시들 안에서도 갖가지 형태의 종교가 있다. 해를 신으로 예배하는 사람, 달을 예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과거의 위인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런 위인을 그냥 한 분의 신으로만 모시는 것이 아니라 최고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 다만 유토피아의 예배 의식이 기독교와 다른 것은 어떤 신상도 세워놓지 않고 각자 자유롭게 자기 신앙에 따라 예배를 본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신을 미트라스(mythras)라고 부르는데 이는 신의 고유 명사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인 신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에 불과하다. 각자 자기가 송배하는 신을 마음속에 그리며 사제의 인도에 따라 자유롭게 경건하게 예배를 보는 유토피아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평온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러한 예배 의식은 유토피아 사람들을 한 공동체, 울타리로 묶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p157-162

공유제에 대해 언급해 보고자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공동으로 생산한다. 마찬가지로 소비와 분배 역시 공동으로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세계에서는 일단 노동 시간이 6시간만 배정된다. 정오까지 3시간 일하고, 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점심 후에 2시간 쉬고, 다시 3시간 일하여 하루 일과를 마치거 저녁 8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6시간 일하고도 생필품 공급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유토피아는 그들의 작업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쓸 물품이 있다고 말한다. 16세기 산업사회 초기 하루 12시간 이상을 노동했다고 한다. 지금 현대인들도 하루 8시간 노동을 하고 산다. 그런면에서 유토피아가 그려주는 노동 시간은 꿈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래는 공유제에 대한 얘기다. 즉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원칙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각 도시는 네개의 비슷한 구로 나뉘어 있고 각 구의 한복판에 모든 종류의 물품을 갖춘 시장이 있다. 각 가구에서 만들어내는 것들이 이곳으로 운반되어 창고에 보관되며, 각 물품마다 각기 정해진 장소에 놓여 있다. 각 가구주는 여기에서 자신과 자기 집에 필요한 물품을 찾아 돈을 지불하거나 어떤 보상 없이 그냥 가져간다.

p98

언뜻 보기에 참으로 좋아 보인다.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없게 되고, 과시하거나 남보다 앞섰다고 자랑하는 헛된 자만심이 유토피아에서는 전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좋은 제도를 왜 인류는 체택하지 않고 있을까? 이런 유토피아적 생각을 펼친 인물이 있으니 19세기 마르크스이다. 20세기에 와서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이러한 제도가 실제 채택되어 실행된다. 마르크스는 빈부격차의 주요 원인인 사유재산제도를 없애고, 그 대신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의 제도를 제안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와 낚시할 수 있는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 그런데 문제는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할 때 인간이 많이 게을러진다는 데 있다.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1987년에 무너졌으며 현실적 상상은 폐해를 맛보게 되었다. 물론 유토피아가 주는 공공적 혜택은 현대 사회에 와서 복지의 형태로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주는 그런 복지의 형태에 비해서는 턱없이 못미치지만 말이다.

유토피아가 보여주는 세상은 가히 꿈꿔볼만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과 나태함, 악함이 있는한 이러한 유토피아는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과연 인간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이 살면 과연 행복하고 사회는 정의롭게 공의롭게 만들어지게 될까?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작가가 쓴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에 대해 잠깐 본적이 있다. 맥베스 부인은 어쩌다가 세 명을 살인하게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권태'로부터 비롯되었고 한다. 인간은 따분함, 권태를 참지 못한다. 또한 기계적이며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 펼쳐지며 일탈을 꿈꾼다. 그렇다. 인간을 만족 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그 인간이 자족하는 법을 알게 되면 삶은 유토피아로 바뀌게 된다. 인간 사회에 있는 문제점을 잠시 유토피아를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단지 이상향으로만 그치지 않고, 모어의 생각을 가져와 새롭게 확장하고 보완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이상 사회를 다시금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선 이런 유토피아는 희망사항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박하게 먹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아무에게도 상처주지마라.

-호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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