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이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어떤이는 종교를 통해 낙원을 이미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저자는 어디엔가 있을 환상의 나라를 쫓기 보다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 유토피아를 스스로 만들어보도록 채근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코로나 19가 세상을 암흑 가운데로 내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악화된 경제와 치솟는 물가, 기후위기, 국가 간 분쟁, 빈부 격차, 불안한 정치 현실 등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둡고 암울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OECD 국가에서 자살률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현실을 이겨내기는 커녕 사회 전체를 더 암울하게 한다고 생각된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모어는 단순히 철없이 이상적으로만 꿈꾸는 비현실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 사회를 만들어 가려고 하였다. 개인의 행복을 고민하고, 결혼과 안락한 죽음에 대해 얘기하고, 교육과 생업을 논의하면서 이상적인 공동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 평등, 도덕, 복지 제도, 경제 체제가 얼마나 새롭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주장한다. 또한 유토피아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새롭게 생각하며, 종교의 자유에 대해 누구보다 열린 마음을 가졌고, 공공의 이익이 잘 보장되는 공유제에 입각한 정의 사회의 모델을 근사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독자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종교와 공유제이다. 모어는 유토피아를 통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동사회를 추구한다. 현대 사회는 자유롭게 종교를 택할 수 있으나 중세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특히 로마 사회에서 탄압을 받으며 성장한 기독교가 중세 사회에서 국교로 정해지면서 기독교 외에 종교는 이단이 되었다. 종교 또한 힘과 권력이 생기면 썩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유일한 종교가 되면서 부패했다. 모어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