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 김열규 교수님의 저서를 많이 읽었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기억은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뒹굴었던 기억밖에 없다. 나는 이른바 북키드였던 것이다. 그후 사회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책과 먼 삶을 살았지만, 사회에 나와 밥을 벌기 위해 일을해야 하기 전까지는 나에게 책은 세상의 전부와 같았었다.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까지 학교에 다닐때의 가장 큰 목표는 도서관의 책을 한권도 빠짐없이 모두 읽어버리는 것이었으니까...

그때 탐독을 하던 저자 중 한 사람이 바로 김열규 교수님이었다. 우리나라 민속학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그들 통해 나는 구비문학의 중요성과 우리민족의 원형질에 관해 많은 지식과 가르침을 얻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얻었던 것은, 민속학에 대한  단순한 지식들보다는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에 관한 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이 노년에 들어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내놓은 이 책 '독서'는 그래서 더욱 나에게 울림이 큰 책이다. 이 세상에 나를 제외하고도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읽을 거리를 찾아서 방황하는 존재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읽는것 자체가 살아간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동류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류의식을 느끼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존경하던 분이라는 것이 더욱 감명스럽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분의 독서에 대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을 읽고 있노라면 솔직히 주눅이 든다. 이제껏 한번씩 친구들과 술자리로 하면 가끔씩 열변을 토하곤 하던 나의 독서생활에 대한 무용담은 그분의 책 앞에선 겸손히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을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어려운 시기를 살아왔지만, 그분이 살아오던 그 시기는 애당초 읽을거리라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이야기를 통해서, 즉 듣기를 통해서 이야기를 접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종이를 통해서 이야기를 접한 '먹물'인 나와는 출발이 다르다보니 그분의 구비전승에 대한 집착과 애착이 그러했다는 것이 비로소 이해가 간다. 이 책에 수록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너무 아픈 사연에 가슴이 뭉클하고, 너무 열심인 그에 비해 나의 나태함이 한심스럽고, 때로는 너무 우스운 이야기에 키득키득 웃음을 웃기도 한다.

이 책은 그분의 독서인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단순한 개인사적인 에피소드들만 나열된 책은 아니다. 이 책에는 책을 읽는다는것에 대한 그분의 소중한 가르침이 잘 정리된 책이기도 하다. 과연 독서의 대가가 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된다. 돌려읽기, 꼼꼼읽기, 몰아읽기 같은 것들은 나 스스로도 고안하고 실행했던 것이지만, 속독과 숙독, 도둑읽기, 완착... 같은 대목들은 과연 나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지의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짧은 분량으로 수록된 '내 것이 되어버린 책들'에서 비로소 김열규 교수님의 개인적인 삶의 독백을 듣게 된다. 사람은 읽은 것을 양분으로 자라는 나무이다. 라면만 열심히 먹으면 내 몸이 라면으로 구성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읽고 영혼에 빨아들인 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의 영혼을 구성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들에 대해 그분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무엇으로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역시 노 대가는 삶의 마지막 부분 언저리에서도 여전히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소설 - 상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덮고 나서도 바로 책을 책장에 꼽지 못하는 책들이 있다. 가끔. 그런 책들은 그 책이 나에게 준 감동의 깊이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고 해서 바로 그 책에서 내 마음이 떠나게 하지 못하는 마력을 발휘하는 책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책들을 만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내 마음이 점점 딱딱한 껍질로 덮여가는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요즘 그런 깊은 감동을 가진 책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요즘 만나기 힘든 바로 그 오래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길고 긴 이야기를 빙 돌아서야  비로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해가 되는 책. 책의 처음부터 스릴과 쾌감을 느끼게 하는 트랜디한 책은 아니지만,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지는 감동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지글지글 타오르게 만드는 강한 힘을 가진 책이다. 한 사내아이의 아픔과 꿈. 그리고 그의 소망과 세상을 향한 도전. 그리고 마지막에 이루어지는 엔딩...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제목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제목이 그 책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책을 읽고 난 다음에야 아하...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히 요즘 선정적인 제목을 덩달아 붙이는 출판계의 풍토에 비추어 볼때 책을 읽기 전의 제목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인 '본격소설'이라는 특이한 제목은 책을 읽기부터 늘 궁금하였다.

사실 '본격소설' 이라는 단어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한데, 그 뜻을 정확하게는 알수 없는 정체불명의 단어였다. 혹 내가 모르지만는 문학인들에게는 친숙한 용어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요즘 대세를 이루다시피 하는 장르소설과 장르소설이 아닌것을 구별하고자 하는 용어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가 쓴 또 하나의 유명한 소설의 제목이 사소설인 것을 감안하면, 본격소설이라는 제목은 사소설과는 대비되는 소설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세기의 서양소설이 소설의 규범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19세기류의 소설들을 본격소설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늘 그런 류의 소설을 자신이 써보는 것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하는 본력소설이라는 것은 저자가 일본문학의 대세인 자신의 삶을 소설화한 '사소설'이 아니라, 저자의 창작에 의해 탄생한 실재로 있지 않은 소설을 말하는 것인것 같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본격소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 실재로 존재한 인물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의 화자 역시 저자의 실제 삶의 프로필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학전공자가 아닌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본격소설이냐 아니냐라는 저자의 명칭이 아니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에 관한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소설은  아직은 일본이 전후의 피폐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시기에 미국으로 밀항을한 한 가난한 사내에 관한 의문점으로 시작을 한다. 비자문제로 가장 허드렛일중 하나인 입주운전사로 미국생활을 시작을 한 어린 사내는 비상한 노력으로 짧은 시간에 미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사업가로 성장해버린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의 노력은 눈물겨움을 넘어서 지독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이다. 과연 그 엄청난 노력을 한 에너지가 무엇일까... 그런 의문이 일어날 즈음 책은 과거의 일본으로 돌아간다.

태평양 전쟁전. 일본의 상류층과 귀족들의 생활. 같은 부유층이면서도 근본이 깊은지 얕은지를 따지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일본의 상류층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수도인 도쿄뿐만이 아니라 고급 별장지에다 경쟁적으로 별장을 짓고 호사스러우면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전쟁이 그들의 삶의 모습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한 스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하면서, 만주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속에 이 소설의 주인공이 들어 있었다.

거지보다 더 남루한 모습. 같이 가난한 가족중에서도 유난히 따돌림을 받을수 밖에 없는 이유. 총명한 눈빛을 가리는 겹겹히 쌓인 아픔의 층들. 그는 그 모든 굴레를 벗어나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했으나, 그가 자신의 빈한한 처지를 개선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목숨을 바쳐 사랑한 사람은 그가 감히 다다를 수 없는 높은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항.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신세계로의 밀항은 그래서 이루어진 것이다.

길고 긴 서사의 끝자락 무렵에서 우리는 그의 집념이 어떤 아픔의 소산인지, 그가 성공을 이루어서 궁극적으로 얻기를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큰 성공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15년이라는 시간이,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긴 아픔의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라는 힘은 그가 사랑하던 사람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고 말았는지... 이 책은 숙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와, 무정한 시간이 삶을 허물어가는 힘에 관한 것이다.

본격문학이라는 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든 나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트랜디하게 쉽게 읽히고 가벼운 감흥을 주는 책과는 분명히 차별되는 책은 아니다. 멋을 살린 어려운 문장은 없다. 미국에서 공부한 원작자의 문장때문인지, 깔끔한 번역때문인지 일본 번역서를 읽을때 느껴지는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쉽고 매끄럽고 술술 읽히는 문장들 뒤에 감추어진 아름과  감동과 슬픔은 크고 강하다. 그래서 이 책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소설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 100배 즐기기 - 100배 즐기기 시리즈, City '08~'09 100배 즐기기
홍연주.홍수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꽁꽁 닫혀 있는 해외여행의 문이 활짝 열린지 10여년. 이젠 우리민족이 명실공시 세계각국은 마치 제집 안방 드나들듯이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너무 빠른 시대에 세계화를 실감나게 경험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여행문화 못지않게 여행에 관한 책자들의 진화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여행문화의 변천은 그대로 여행책자의 변화를 통해서 반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행책자가 우리의 여행문화를 견인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행과 여행서적은 서로 뗄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존재이면서 세계화의 상징이다.

2000년대 초반 서점가를 휩쓸었던 책들이 있었다. 바로 '세계를간다'시리즈이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몇몇 나라만이 아닌 거의 전세계의 모든 지역을 망라한 거대한 기획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내용의 알참으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책이었다.

어려서부터 역마살이 많아선지 유난히 이곳 저곳의 바람 만끽하기를 좋아하던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던 책이었다. 기회가 닿아서 그 나라에 직접 갈수가 있으면 갈 수 있는 나라의 좋은 지침서로서, 갈수가 없는 나라이면 내 방의 책상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그 나라를 머리속에 떠올리는 마음속의 여행의 안내서로서 그 책들은 좋은 읽을거리가 되어주었다.

그 출판사에서 새로운 시리지를 발간했다. 바로 '100배 즐기기'시리즈이다. 서점에서 타이완에 관한 100배 즐기기를 처음 발견했을때의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안내서는 고사하고 타이완에 관한 안내책자가 단 한권 밖에 없었던 실정이기 때문이다.

'100배 즐기기'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이 빠른 속도로 많은 시리즈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듯 예전보다  훨씬 장정이 화려하고 사진들이 이쁘고 많다. 그리고 내용도 무척 풍부하다. 예전의 시리즈는 한권에 많은 지역에 대한 정보를 넣으려고 했고, 자연히 책이 백과사전식이 되어 읽는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척 컬러풀하고 쉽게 읽혀지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면서도 내용이 충실하다. 비결은 책 한권이 감당하는 범위를 파격적으로 줄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여행책들에서 푸켓을 찾으려면 태국에 관한 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태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함께 품켓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심지어 어떤 책들은 푸켓을 알기 위해 태국뿐만 아니라 인근의 캄보이디아의 앙코르와트는 물론 베트남에 관한 내용까지 함께 담아 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달랑 푸켓만을 주제로 책을 내 놓는다. 대단한 파격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시대적 수요에 정확히 부응하는 전략이 아닐수 없다.

파리 100배즐기기도 마찬가지다. 유럽이라고 뭉떵거려놓은 대부분의 여행서적과는 달리. 콕 집어서 프랑스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파격인데, 프랑스의 다른 땅덩이는 모두 떼어버리고 파리라는 하나의 도시에 관해서만 책 전체를 할애하고 있다. 바로 이런 책이 지금 나같은 사람이 찾던 책이다. 일전에 잠시 파리에 체류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단체여행이었다. 그때 스쳐가면서 몇일만에 주마간산격으로 파리를 보면서 언젠간 반드시 다시 찾아오리라 생각을 했었다.

이제 내년 파리여행을 꿈꾸면서 책들을 검색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서점에서 일전에 보았던 100배 시리즈에 드디어 파리편이 나온 것이다. 역시 이 책은 나의 기대를 무시하지 않았다. 파리의 자유여행에 필요한 유익한 정보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다! 볼거리 갈거리, 자세한 지도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즐기고 만끽한 문화들에 대한 정보들까지 잘 정리되어 있는 무척 실용적이 책이다.

사실 파리에 대한 책들은 많다. 유명한 문호들의 소설에도, 에세이에도 많이 등장하는 도시다. 파리를 여행한 우리나라 여행 선도가들의 기행문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개인적인 선호와 기호가 강한 책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자신의 선호에 따라서 자신의 일정을 짤수 있는 정보들의 집합이다. 너무 복잡하지 않고, 너무 간략하지 않은것, 너무 개인적이지 않고, 너무 잡다하지 않은 것.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그런점에서 이 책을 비교적 빨리 발견한 나는 운이 좋은 셈이다. 내년 여름까지 남은 시간을 알차게 준비할 여유를 얻었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꾼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7
쉘 요한손 지음, 원성철 옮김 / 들녘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살아가면 갈수록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연륜이란 것이 늘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삶이란 것은 도데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는 날들이 점점 더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니. 그런 것을 느끼지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이 책 같은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삶이란 것에 관해서 진지하게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무척 아름답다. 멋진 번역의 덕분에 두권에 이르는 책 전체가 시적인 흐름으로 읽혀진다. 책은 무척 고달픈 삶이란 것을 보기 드문 강한 주제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화를 읽는 것과 같이 부드러운 느낌으로 읽혀진다. 회상과 상상,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내면의 이야기. 사람의 속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엇갈리는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머니와 오누이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스톡홀름의 가난한 구역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 방 두칸짜리 집 중에서도 한칸은 세를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어야 하는 집이다. 어느날 어디선가 아버지란 존재가 그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집안은 활기를 뛰고 집안은 또 우울에 잠기고, 몰락한다. 겨우 아버자가 그 집을 떠나고야 집은 겨우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줄거리가 이어지는 씨줄과 날줄은 그 가족의 구성원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마술같은 매력으로 보여지기도, 감옥에서 출감한 골치거리로 보여지기도,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켜세울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외롭기만 한 삶의 동반자로 보여지기도, 가정폭력의 주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 것이다. 삶이 가지는 모습은 다면적인 것이고,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일 것일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이 전하는 내용이 사실일까. 글쌔...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무례하기도 하고 불한당같기도 하고, 선량하기도 하고 한없이 착하기도 한 그 사람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나이가 충분히 들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훌륭한 작가의 의사에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다면적인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여러가지 모습은 모두 사실이다. 비록 그 사실이라는 것들이 서로 정반대로 충돌하는 것들까지 포함하더라도...

세상에는 한가지의 진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고달프고,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 길고 지루한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때로는 놀랄것 같이 다른 삶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아니 삶을 규정짓는 물질적인 조건이 변화하기 여렵다고 한다면, 다른 것은 어떨까... 예를들면 사랑이나 우정같은 것 말이다. 영원히 미워하고 증오하던 대상이 긴 새월이라는 무게가 벗겨지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움으로 느껴진다던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그 시간들이 먼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아쉬움으로 느껴진다는 그런 경험 같은 것.

이 책의 아버지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이야기로 표현한다. 그 이야기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서 어느것이 실제 그의 모습이었는지 독자인 우리들은 알수가 없다. 저자인 그는 알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저자 조차도 그의 삶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저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아버지라는 인물을, 이 책에 생생하게 살아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글로 묶어서 박제화하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 책의 여러가지 모습 모두가 당신들의 모습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고 바라는 모습들 모두가 그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나하면 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의 이야기로 재탄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신전 2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장르소설이 인기이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패러다임이라고 할까. 요즘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에 잘 맞는 유형의 책인것 같다. 흔히들 장르소설들이 가볍다고 하지만, 기존의 어법을 따라가는 소설들을 읽어보아도 강한 주제의식을 갖춘 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책들 중에서도 새로운 어법으로 새로운 감성과 세상을 보는 방식을 잘 담아내는 책들이 보인다. 달라진 세상에 잘 적응하는 책들인 셈이다.

 

한국을 장르소설의 불모지라고 한다. 그래서 서점을 한바퀴 둘러보면, 이젠 순도가 떨어지는 일본의 이류 장르소설들까지 남김없이 번역되어 아까운 서가를 가득히 메우고 있다. 국내에 장르소설에 대한 수요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국내작가들의 좋은 작품의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종호 작가는 분신사바같이 영화화 된 유명한 작품들을 창작해내는 많지 않는 국내작가들 중 한분이다.

 

이종호 작가가 이번에 귀신전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귀신전은 원래 3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1권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나는 우연한 기회에 2권을 먼저 읽게 되었다. 귀신전은 권수에 관계없이 2권부터 먼저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충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책은 전편의 내용을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그 흥미진지함에 몰입하게 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귀신이야기라고 하면 늘 전설의 고향만 떠오르던 나에게, 이 책은 우리들의 귀신들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하고 입체적인 면을 띌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 책이다.  예전에 '중천'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지만, 이 책도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잘 찾아내어 그것들을 현재적인 상황에서 멋있게 재구성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전통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과거로부터 전해져와 오늘날의 현실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세태에서 '왠 귀신 ?" 이라고 정색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우리 문화에 속아있는 원형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본이나 서양의 문화가 아무리 우리독서계를 석권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아직도 우리전통에서 나온 문화적 아이콘들이 더욱 실감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 귀신전은 우리들에게 다른 나라의 장르소설을 읽을때와는 사뭇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이국적이고 흥미롭다는 느낌보다는, 무척 실재적은 공감이가고 정말로 공포가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실제로 공포가 느껴지는 것의 차이가 바로 그 문화가 우리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그점에서 우리에겐 우리들의 장르문학이 존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작가가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꾸준히 발간하고 있는 귀신전과, 국내에서는 드물게 이런 방대한 규모의 연작이 가능하게 수요를 받쳐주는 국내의 독자층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우리 토종문화가 가지는 뿌리가 튼튼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서 무척 가슴이 뿌듯하다. 이렇게 실감나는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들이 많이 존재 한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도 이런 좋은 국내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책은 정말 흥미롭다. 이 책이 우리에게 경험하게 하는 기괴함과 공포, 그리고 즐거움은 단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이야기 구조의 힘이 클 것이다. 그 위에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이 더해져서 이 책이 가지는 흥미로움이 탄생하는 것 같다. 단지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아끼고 사랑하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실감나고 더욱 흥미로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