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1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7
쉘 요한손 지음, 원성철 옮김 / 들녘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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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때가 있다. 살아가면 갈수록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연륜이란 것이 늘어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삶이란 것은 도데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물어보는 날들이 점점 더 줄어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니. 그런 것을 느끼지조차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이 책 같은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삶이란 것에 관해서 진지하게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은 무척 아름답다. 멋진 번역의 덕분에 두권에 이르는 책 전체가 시적인 흐름으로 읽혀진다. 책은 무척 고달픈 삶이란 것을 보기 드문 강한 주제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동화를 읽는 것과 같이 부드러운 느낌으로 읽혀진다. 회상과 상상,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내면의 이야기. 사람의 속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엇갈리는 이 책은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머니와 오누이가 외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스톡홀름의 가난한 구역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세를 들어 살고 있다. 그 방 두칸짜리 집 중에서도 한칸은 세를 줄이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어야 하는 집이다. 어느날 어디선가 아버지란 존재가 그곳에 나타났다. 그리고 집안은 활기를 뛰고 집안은 또 우울에 잠기고, 몰락한다. 겨우 아버자가 그 집을 떠나고야 집은 겨우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버지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얼어붙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줄거리가 이어지는 씨줄과 날줄은 그 가족의 구성원들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마술같은 매력으로 보여지기도, 감옥에서 출감한 골치거리로 보여지기도,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켜세울 희망으로 보여지기도, 외롭기만 한 삶의 동반자로 보여지기도, 가정폭력의 주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 것이다. 삶이 가지는 모습은 다면적인 것이고,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한 그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일 것일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사실일까. 이 책에 등장하는 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이 전하는 내용이 사실일까. 글쌔...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에 나오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무례하기도 하고 불한당같기도 하고, 선량하기도 하고 한없이 착하기도 한 그 사람이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나이가 충분히 들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이 훌륭한 작가의 의사에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 인생이란 다면적인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여러가지 모습은 모두 사실이다. 비록 그 사실이라는 것들이 서로 정반대로 충돌하는 것들까지 포함하더라도...

세상에는 한가지의 진실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고달프고,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 길고 지루한 가난하고 비루한 삶을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은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때로는 놀랄것 같이 다른 삶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기도 하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아니 삶을 규정짓는 물질적인 조건이 변화하기 여렵다고 한다면, 다른 것은 어떨까... 예를들면 사랑이나 우정같은 것 말이다. 영원히 미워하고 증오하던 대상이 긴 새월이라는 무게가 벗겨지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움으로 느껴진다던지, 내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하던 그 시간들이 먼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아쉬움으로 느껴진다는 그런 경험 같은 것.

이 책의 아버지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이야기로 표현한다. 그 이야기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에서 어느것이 실제 그의 모습이었는지 독자인 우리들은 알수가 없다. 저자인 그는 알까. 내 생각에는 아마 저자 조차도 그의 삶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 같다. 저자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아버지라는 인물을, 이 책에 생생하게 살아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글로 묶어서 박제화하기 싫어하기 때문일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 책의 여러가지 모습 모두가 당신들의 모습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상상하고 바라는 모습들 모두가 그들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나하면 책은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의 이야기로 재탄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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