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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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해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은 법전 두께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안데르센의 모든 동화가 담겨진 책이다. 책 두께가 어마어마했지만 읽을 때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워낙 양이 많아서 몇 편씩 나누어 읽었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동화이긴 하지만 장편소설 몇 편을 읽는 기분이라 책을 덮는 순간 뿌듯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엄지공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와 백조이야기 등등... 특히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완두콩 이야기가 안데르센 동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이 소환된다. 그림책으로 읽었던 동화들을 어른이 되어 글밥이 많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다시 읽으니 반갑고 새로운 느낌이 들어 한달 가까이 추억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표지는 덴마크 출신의 안데르센을 생각하며 그린듯 몽환적인 눈밭의 소녀. 눈의 여왕 속 삽화로 에드먼드 뒤락의 작품이 담겨진 따스한 화보같은 느낌이다. 그림을 보니 더더욱 눈이 보고 싶은데 올 겨울은 비가 많이 내린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인데 예전처럼 삼한사온이라는 날씨도 들어맞지 않는 요즘이다. 눈의 여왕처럼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겨울만의 매서운 추위도 반가울텐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많은 주인공을 만나고 꽃과 나무와 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온 기분이다. 안데르센은 특히 식물과 동물들을 의인화한 동화를 많이 지은 것 같다. 어릴 때처럼 어떤 사물과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애초부터 그의 참모습은 백조였기 때문에 오리에게서 태어난 것쯤은 아무런 허물도 아니었다. 못생긴 새끼오리는 온갖 고난과 슬픔을 견뎌낸 것이 참으로 기뻤다.

가엾은 새끼오리처럼 어디든 어울리지못해 기웃거리는 날들이 안타깝다. 오롯이 나의 존재로서 당당해지고픈 이유이다. 애초에 참모습은 백조였는데 오리 틈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날들이 겸손한 백조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참 모습을 그대로 보아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초라한 내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내면의 참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참된 가치를 발하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 동화책으로도, 티비 만화영화에서도 몇 번이고 돌려 보았던 야생백조이야기는 마법에 걸린 오빠들을 위해 덤불가시를 짓이겨 스웨터를 짜는 엘리자가 나온다. 옷을 완성하기 전까지 말을 하면 안되기 때문에 엘리자는 덤불가시를 구하기 위해 밤에 종종 무덤가로 나가는 것을 들켜 마녀로 낙인되어 화형을 받게 된다. 바로 직전에 날아 온 백조 오빠들에게 그동안 만든 스웨터를 던져주며 모든 것이 화해되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스토리이다. 오빠들을 위해 희생하는 몫은 어린 엘리자였다. 마음 아프게 보며 응원하던 기억이 따올라 재밌게 읽었다. 어릴 땐 정말 마녀나 마법이 있는 줄 알고 푹 빠져서 억울한 엘리자가 화형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고자질하고 왕에게 이간질하는 대신들이 얼마나 밉던지.. 지금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첨하고 아부하는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있으니 안타깝다. 언제 어디서든 억울한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로 내 기억 속의 그 동화 완두콩 이야기가 바로 이 안데르센의 동화였다. 꼬투리 안에 든 완두콩 다섯 알의 형제들이 제각각 원하는 곳에 떨어지기도 하고 원치 않는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완두콩이 되기도 하고 욕심만으로 채울 수 없는 완두콩의 이야기 속에 희망을 묻어 놓은 안데르센의 따뜻함이 좋았다. 아마도 우리가 읽은 책 대부분은 어린이 용으로 각색되어진 작품이었다는 것도 늦게 알았지만~^^

그 때 아버지는 딸의 손에서 나온 반짝이는 가루가 스치자 눈부신 불꽃이 백지처럼 보이던 진리의 책 위에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영원한 삶에 대해서 쓰여진 부분이었다. 눈부신 빛 속에서 단지 한 글자만 눈부시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믿음'이란 글자였다.
진리의 낟알이 떨어져 빛이 나는 '믿음'이란 글자에는 아름다움과 선함의 빛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믿음'이란 글자에는 희망의 다리가 생겨나 영원한 나라의 헤어릴 수 없는 사랑에 가 닿았다.
현자의 돌

어릴 때나 젊을 때는 사랑이 제일 귀한 말인줄 알았다. 살다보니 사람 사이에 가장 소중한 약속들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답게 나는 이 대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믿음을 통해 희망이라는 다리가 생겨나 비로소 사랑에 가 닿을 수 있다는 말이 의미있게 새겨진다.

인생의 모든 날 가운데 가자 성스러운 날은 우리가 죽는 날이다. 그날은 변화와 변신을 겪는 성스러운 날이다 지상에서 맞이하는 이 엄숙한 마지막 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후의 날

이런 엄숙하고 성스러운 질문을 하는 철학적인 동화라니!! 어릴 때는 생각지 못했을 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아직 낯선 죽음이라는 성스러운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더 생각해 볼 부분이다^^;;

동화이지만 어떤 작품은 단편이나 중편소설의 분량만큼 꽤 긴 이야기들도 있었다. 달님이 본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했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도 자주 나와서 궁금해졌다. 168편의 동화 속에는 물론 공주 이야기같은 환상적인 동화도 있지만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때론 아가씨나 공주를 천박하게 표현하거나 외설적인 표현도 나오고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구리 클라우스>는 인간의 생명을 무섭게 다루기에 동화러기에 경악스럽기도 했다.

안데르센은 독자층을 어른과 아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어른을 위한 동화 이후 조금 더 각색해서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그리고 부모와 함께 읽어 나가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여기를 썼다고 한다. 해설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나이팅게일이라는 새 이름이 종종 나와서 덴마크에 유명한 새인지. 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를 존경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세번째 사랑했던 여인이었다고 한다. 한 여자의 인생관이 안데르센에게 예술적인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여러모로 다채로운 동화집이었다. 가끔 어디든 펼쳐 읽어도 좋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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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은 알기 쉽게 말한다 -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7가지 법칙
이누쓰카 마사시 지음, 장은주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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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일하고 싶지 않다면
한 번만 들어도
머리에 남는 설명을 하라!​
상사, 후배, 고객 누구든
단번에 알아듣게 만드는 
설명의 기술

단순히 아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다.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잘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작가 역시 공부가 부족했기에 그런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하기위해 노력해 왔다.

작가는 교육 콘텐츠 프로듀서. 대학시절부터 입시지도를 시작하여 25세 때 일본 최고 입시학원 순다이학원 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하여 화학 강사로 일하며 '머리에 박히는 설명'으로 정평이 났다.

찰떡같이 설명했는데 개떡같이 알아듣는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데 왜 못 알아듣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남 탓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첫 번째, 상대방이 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가?
두 번째, 나는 내가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가?
세 번째, 상대방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이중 하나라도 “아니요”라는 답이 나온다면 쉽게 말하기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거나, 본인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상대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원인을 알면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

머릿속에 각인되는 설명에는 조건이 있다. 효율적인 학습효과를 위해 새로운 지식을 상대방의 지식과 연결하고 그 연결한 지식에 또 새로운 지식을 연결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지식의 네트워크이다. 어쨌든 본인의 설명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이해의 계단을 만들어 단계별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해의 계단의 폭부터 작게 만들어 설명하고, 한 문장에 모순을 넣어 의도적으로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모순을 제시해 상대방이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들어 설명하는 방법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변화'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생물이다. 나는 이 변화를 설명 중에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아는 것도 다시 한번 짚어주자.

상대방이 이미 어느 정도의 지식이나 이해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도 설명에 요령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더라도 흐름에 따라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때는 이런 화법이 효과적이다.

"원래 당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짚어본다"는 어조로 대전체를 넣어 질문을 하면 효과적이다.

누군가에게 나의 지식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몇 가지의 방법을 알고 상대가 큰 숲을 볼 수 있게 설명하고 호기심을 유발하여 그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법을 설명한다. 친구나 아이에게 가르쳐 보는 것을 권하는 방법은 1타 강사들의 확실하게 설명의 기술울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익숙한 것들을 비유하여 머릿 속으로 그려낼 수있고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보는 것은 설명하는 기술이 향상되는데 가장 탁월한 것은 없다. 회사에서나 학원에서 누군가에게 나의 지식을 전달하고 알기쉽게 말하는 것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안내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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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
로셀라 포스토리노 지음, 김지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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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식당에서
나는 히틀러의 시식가가 되었다.

절대 권력자들은 늘 ‘독살’을 두려워했다. 기원전 54년 로마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버섯 요리를 먹고 독살당했고,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두다리 황후는 남편 찬드라굽타의 음식을 대신 먹고 죽었다. 20세기에도 여전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는 1978년 영국 버킹엄 궁을 국빈 방문했을 때 검식관을 대동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역시 여러 명의 개인 검식관을 두고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검식관을 채용한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한국일보)

문예출판사의 가제본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소설이다. 크리스마스에 읽기에 가벼운 소설은 아니었지만 실화바탕과 히틀러의 시식가라는 소재가 흥미로워서 책을 받을 때부터 궁금증이 컸다. 슬픈 전쟁의 서사가 암울한 시대에 파묻힌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전쟁의 단명과 이면,
인간의 모순된 욕망을 포착해 낸
2018 캄피엘로 비평가상 수상작가
로셀라 포스토리노

역사상 가장 잔혹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아돌프 히틀러 역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장편소설 ‘히틀러의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히틀러의 검식관을 소재로 삼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감별하기 위해 끌려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히틀러의 음식을 시식했던 15명의 여성 중 유일한 생존자인 마고 뵐크의 인터뷰를 토대로 썼다. 전쟁이 나면 왜 여자들에게 더 가혹한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읽는 내내 참담했다. 물론 전쟁에 끌려가 무고한 민간인을 죽여야 하는 남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도 못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주는 죽음과 이별, 인간성의 상실과 선과 악이라는 경계가 무너지는 일상들이 무서운 공포로 다가온다.

소설은 구체적 시기와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뵐크의 증언을 뼈대로 했다. 스물 여섯 살의 로자는 1943년 남편이 2차대전으로 징집되면서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와 시부모와 함께 지낸다. 어느 날 로자는 영문도 모른 채 나치 친위대에게 붙잡혀 히틀러의 동부전선 본부가 들어선 인근 병영으로 끌려간다. 이곳에서 로자는 함께 끌려온 열 명의 여성들과 함께 히틀러가 먹게 될 음식을 미리 먹는 ‘시식가’이자 ‘독 감별사’ 역할을 하게 된다.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의 기미상궁이 되어 생명을 부지하는 댓가로 보통 노동자들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 음식을 먹고 독이 퍼질 때까지 60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하는 공포와 불안감은 음식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독약이 있을지도 모르는 죽음을 담보로 한 시식단에 유대인으로 꾸리지 않고 순수혈통인 독일인 여성으로 소집한다. 히틀러는 자신이 먹게될 음식을 유대인과 공유하는 것조차 꺼렸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거나 실종당한 슬픔을 마주할 겨를도 없이 독이 들었을지 모르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일에 내몰린다. 음식을 맛보면서 동시에 공포의 냄새를 맡아야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에 몸서리치게 섬뜩해진다.

매일 세 번, 죽음의 공포와 마주해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매번 식사 후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개처럼 울기도 했다. 시식을 위해 병영에 모인 여성들의 입장도 제각기 다르다. 히틀러가 먹게 될 음식을 미리 맛보는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광신도들이 있는가 하면, 추근대는 친위대원들의 관심을 즐기는 여성도 있고 불의에 저항하고 불가항력적인 문제에도 기꺼이 정의로운 편에 서는 여성도 있다. 흥미로운 역사적 실화 뿐 아니라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인간적의 고뇌와 삶에 대한 애착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처음에는 다들 음식을 조금씩 입속에 집어 넣었다. 우리에게 어쩌다 초대받은 그 사람의 점심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억지로 삼키지 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음식을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이 음식은 애당초 우리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순전히 우연히 이 음식을 먹게 된 거다. 음식은 식도를 따라 미끄러져 뱃속에 뚫린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음식물로 채우면 채울수록 구멍은 점점 더 커졌고 구멍이 커질수록 포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디저트로 나온 아펠슈트루델(여러 겹의 페이스트리 안에 사과와 건포도를 채운 디저트)이 너무나 맛있어서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였다.
p.13

내 몸은 총통의 음식을 흡수했다. 이제 총통의 음식은 피를 타고 내 몸속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무사했고 나는 또다시 배가 고팠다.
p.21

두려움은 하루 세 번 노크도 없이 들어와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두려움도 따라 일어났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친구처럼 익숙했다.
p.106

사실 모든 삶은 강박증의 일환이다. 언제든 부딪혀 추락할 수 있다.
p.110

나는 그리움의 대상이 없는 향수병을 앓았다. 그레고어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나는 삶이 그리웠다.
p.133

비밀을 공유하면 가까워지기보다는 멀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여러 사람이 죄를 저지를 때는 눈 딱 감고 해치워야 한다. 어차피 죄책감은 빨리 사라질 테니 말이다. 집단적 죄책감은 형태가 모호하지만 수치심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p.190

12년 동안이나 독재 체제하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독재에 순응하는가? 대안이 없었다는 것이 우리의 변명이다. 나는 고작해야 내가 씹어 삼키는 음식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 무해한 행위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다른 여자들은 한 달에 200마르크를 받고 몸을 파는 것을 수치스러워할까? 높은 급여를 받으며 호식을 하는 이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할까? 그들도 나처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비윤리적 행위라고 생각할까? 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내게 아버지는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재판관이었다. 히틀러에 대해서는 대안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치글러는 그렇지 않았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도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런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인 거다.
p.197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이토록 연약한 것에 어떻게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강한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파괴할 수 없는 것에서 가치를 찾지만, 생명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한 것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할 수도 있는 거다.
p.282

사랑이란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상대방의 경계를 잘 허물기를 열망하는 이방인 사이에서 생겨난다. 사랑은 서로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남지 못한 것은 비밀 때문이 아니라 제3국의 몰락 때문이었다.
p.285

친구란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세상과 격리된 상태에서 말이다.
p.372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가는 힘 없는 인간인 로자가 전쟁 중에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의 상황에서 겪는 일들이다. 그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친구들 떠나 보내고 비밀을 지키고 자신을 지켜나간다. 스스로 악을 행하는 자와 악의 없이 악한 임무를 수행하는 인간의 틈에서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나치에 순응하기 위해 독 음식을 먹어야 했던 공포 상황과 악의 평범성을 소설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지속되는 광기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수 있는지 자문하게 만든다.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폐해와 인간성의 상실로 인한 슬픔과 절망들이 적혀져 있다.
추천사의 적힌 글처럼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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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읽는 시간
손윤권 지음 / 밥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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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한 사람이 되기 위해,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고민하다 선택한 방법이 책읽기라는 작가 손윤권이다.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일을 하다보니 오히려 감성을 잃고 메마르고 차가운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을 만난다. 시집도 읽고 영화도 보았지만 산문집이 특효약으로 작용했다. 산문이야말로 민낯을 내어보이며 솔직한 문체에 감동을 주고 인생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좋아하는 산문집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읽기 편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빠져들어 읽고 나면 한동안 힘들고 지칠때 나는 시나 에세이를 읽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속에서 건져 올리는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인생이지만 묘하게 공통부분이 생기게 된다.

여행, 세상, 관계, 일상, 배움과 청춘이라는 여섯 개의 주제로 산문집을 소개하고 있다.
아직 읽지 못한 책 소개도 많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작가님의 작품이 거론될 때는 내 책장을 한번 둘러 보게 되었다.

떠나는 순간 우린'나'를 만나게 된다

뭐니뭐니해도 나는 여행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래서인지 첫번째 장부터 기분 설레며 읽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여행을 다녀온 작가님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따라 가고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병률의 <끌림>을 펴놓고 싶어졌다. 여행을 가든 산책을 하든 가장 적절한 속도의 여행법이 있기 마련이다. 가벼운 에세이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숨은 자연과 문화재의 역사와 문화, 거기에 깃든 철학까지 찾아가는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권을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그의 글을 통해 우리 국토가 박물관이 되는 사실을 아주 친절하게 보여준다.

한때 김훈 작가에 빠져 소설이며 산문집을 절판된 것까지 모았던 적이 있다.
<자전거 여행>을 읽고 독서모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작가의 글 속에 있는 순서 그대로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절판된 <바다의 기별>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나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모으면서 김훈 작가와 가까워지는 기분으로 홀로 흥겨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묘사가 뛰어나며 군더더기 없이 드라이한 그의 문장들은 길거나 허황한 말이 필요치 않음을 그의 소설과 산문집에서 배우게 된다.

직언:잘못된 세상이라도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

김별아 작가의 <삶은 홀수다>라는 책도 관심이 갔다. 남을 살리는 말보다 남을 죽이는 말을 더 잘하게 되고 칭찬에는 인색하면서 험담에는 넉넉한 이중성이라든지, 댓글하나 안달면서 남의 댓글만 열심히 보며 일희일비하는 일들이 우리 삶속에 병적으로 침투해 있다. 때론 사회의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들이 성실하고 뚝심있게 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름을 아는 작가님들의 작품들은 3장과 4장에 포진되어 있었다. 유명한 작가님이라도 내가 모르면 모르는 작가님이 될 수 밖에 없다^^;;

감탄사:국어의 9품사 중 우리가 가장 많이 써야 하는 품사

박완서님의 <세상에 예쁜 것> 제목마저 사랑스러운 읽은 책을 다시 책꽂이에서 꺼내게 만드는 매력이 생기는 책이다. 박완서님의 소설 <나목>을 읽고 푹 빠졌다는 작가님의 박완서님 사랑..나 역시 그분의 이야기와 문체를 사랑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편한편 읽을 때마다 일상의 생각과 고백들이 모자르거나 넘침없이 푸근하지만 지혜로움으로 가득차 있을 뿐 아니라 가독성까지 뛰어나다.
일상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 <세상에 예쁜 것> 언제 읽어도 생명력을 지닌 감동으로 찾아온다.

감사와 배려를 말씀하시는 이해인님의 산문집도 읽고 싶다. 문득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받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억여행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지금처럼 즉각적인 톡이나 문자가 어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여쓰는 편지 같은 글. 그 글 속엔 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의 독백과 독백의 대화까지 공존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손편지의 느낌까지..
작가의 시선으로 책을 소개해 주는 산문집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분류로 나열해 놓았겠지만 선택적으로 찾아 읽기에 좋을 것 같다. 한눈에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인지 두세장 분량에 소개와 더불어 자신의 감상을 적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정말 종이로 지어진 집같은 책들이 너무도 많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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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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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책을 자주 접할 기회는 드물었다. 현대지성에서 '그리스어 완전 완역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구성했다. 책 자체는 가벼워서 들고 다니며 읽기 좋았다.

참된 진리 앞에서 죽음도 기쁘게 받아들인 정의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한권에 담았다. 그는 실용적이고 상대적인 지혜를 내세운 소피스트에 맞서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며 질문과 대화로 사람들을 일깨운다.
그의 사상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바라본 추종자들의 대화까지 고스란히 읽어볼 수 있었다.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를 빼놓고 그 어떤 사상도 논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앞에서 친구들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대화를 통해 그의 철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불경죄로 사형선고룰 받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자신의 사상을 흔들림없이 지켜 나가며 서양 철학의 근간이 된 것을 제자 플라톤이 저술한 내용이다.

가장 친한 친구 클리톤이 사형을 앞두고 소크라테스의 감옥으로 찾아와 탈옥을 권하는 내용에 흔들림없이 정의롭지 못함을 논증하는 대화가 인상 깊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에 불경죄와 청년들을 부패시킨 죄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았다. 나라가 믿는 신들이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잡신들을 믿는다는 고발에 대해 자신을 변호한 내용이다.

나는 일생동안 남들과 같은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고, 돈버는 일, 가정을 돌보는 일, 장군이 되는 일, 인기 있는 웅변가가 되는 일처럼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나는 모든 공직은 물론이고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음모나 결사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는 자신이 실제로 정직하고 올곧아서 그런 일들에 관여했다가는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러분 각자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여러분을 일일이 개인적으로 만났습니다.
지혜롭지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집요하게 질문하여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를 밝혀나가는 것은 그들에게 즐거운 일입니다.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위해 떠나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곳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오직 신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크리톤:소크라테스의 절친
사형집행 날을 코앞애 두고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 클리톤에게 탈옥을 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친구의 진실함을 알기에 돈을 들여서라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은 탈옥까지 감행하도록 소크라테스를 종용한다. 목숨을 구할 방도가 있음에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는 소크라테스에게 가정과 자식을 키우라는 마음까지 들추어 용기를 내라고 권고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된다. 더구나 목숨을 담보로 억울하게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바라보는 크리톤의 마음은 오직 친구밖에 안보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어떤 운명 앞에서든 자신이 지켜왔던 원칙을 배척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일뿐 아니라 여전히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려는 타당함은 어떤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이다.

하지만 이보시게, 놀라운 사람아. 그럼에도 우리가 방금 도출해 낸 원칙은 내게는 여전히 변함없이 옳아 보이네.
게다가 우리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여전히 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대로 산다는 것이란 명예롭게 정의롭게 산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는 말도 우리에게 여전히 타당한가?

파이돈​
소크라테스의 생애 마지막 순간,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 추종자들이 모여 '영혼불멸'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이 책 중에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이들의 대화에서 죽음은 재앙이 아닌 복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동안 궁금했던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향연 등의 플라톤의 대화편을 서평단 덕분에 읽게 되어 개인적으로 심오한 논쟁이 쉽지 않았지만 색다른 영역을 엿볼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 지혜를 펼치고 깨닫게 하는 과정이 일반화된 우리의 사고를 뒤집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것이 철학이고 변증법적 논증인가 싶어서 빠져들었다. 입력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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