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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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해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은 법전 두께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안데르센의 모든 동화가 담겨진 책이다. 책 두께가 어마어마했지만 읽을 때마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워낙 양이 많아서 몇 편씩 나누어 읽었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동화이긴 하지만 장편소설 몇 편을 읽는 기분이라 책을 덮는 순간 뿌듯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엄지공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와 백조이야기 등등... 특히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완두콩 이야기가 안데르센 동화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이 소환된다. 그림책으로 읽었던 동화들을 어른이 되어 글밥이 많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다시 읽으니 반갑고 새로운 느낌이 들어 한달 가까이 추억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표지는 덴마크 출신의 안데르센을 생각하며 그린듯 몽환적인 눈밭의 소녀. 눈의 여왕 속 삽화로 에드먼드 뒤락의 작품이 담겨진 따스한 화보같은 느낌이다. 그림을 보니 더더욱 눈이 보고 싶은데 올 겨울은 비가 많이 내린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인데 예전처럼 삼한사온이라는 날씨도 들어맞지 않는 요즘이다. 눈의 여왕처럼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릴 겨울만의 매서운 추위도 반가울텐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많은 주인공을 만나고 꽃과 나무와 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온 기분이다. 안데르센은 특히 식물과 동물들을 의인화한 동화를 많이 지은 것 같다. 어릴 때처럼 어떤 사물과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애초부터 그의 참모습은 백조였기 때문에 오리에게서 태어난 것쯤은 아무런 허물도 아니었다. 못생긴 새끼오리는 온갖 고난과 슬픔을 견뎌낸 것이 참으로 기뻤다.

가엾은 새끼오리처럼 어디든 어울리지못해 기웃거리는 날들이 안타깝다. 오롯이 나의 존재로서 당당해지고픈 이유이다. 애초에 참모습은 백조였는데 오리 틈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날들이 겸손한 백조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참 모습을 그대로 보아 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초라한 내 모습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내면의 참모습을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참된 가치를 발하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어릴 때 동화책으로도, 티비 만화영화에서도 몇 번이고 돌려 보았던 야생백조이야기는 마법에 걸린 오빠들을 위해 덤불가시를 짓이겨 스웨터를 짜는 엘리자가 나온다. 옷을 완성하기 전까지 말을 하면 안되기 때문에 엘리자는 덤불가시를 구하기 위해 밤에 종종 무덤가로 나가는 것을 들켜 마녀로 낙인되어 화형을 받게 된다. 바로 직전에 날아 온 백조 오빠들에게 그동안 만든 스웨터를 던져주며 모든 것이 화해되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스토리이다. 오빠들을 위해 희생하는 몫은 어린 엘리자였다. 마음 아프게 보며 응원하던 기억이 따올라 재밌게 읽었다. 어릴 땐 정말 마녀나 마법이 있는 줄 알고 푹 빠져서 억울한 엘리자가 화형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고자질하고 왕에게 이간질하는 대신들이 얼마나 밉던지.. 지금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첨하고 아부하는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 있으니 안타깝다. 언제 어디서든 억울한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로 내 기억 속의 그 동화 완두콩 이야기가 바로 이 안데르센의 동화였다. 꼬투리 안에 든 완두콩 다섯 알의 형제들이 제각각 원하는 곳에 떨어지기도 하고 원치 않는 곳에 떨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쓸모없는 완두콩이 되기도 하고 욕심만으로 채울 수 없는 완두콩의 이야기 속에 희망을 묻어 놓은 안데르센의 따뜻함이 좋았다. 아마도 우리가 읽은 책 대부분은 어린이 용으로 각색되어진 작품이었다는 것도 늦게 알았지만~^^

그 때 아버지는 딸의 손에서 나온 반짝이는 가루가 스치자 눈부신 불꽃이 백지처럼 보이던 진리의 책 위에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영원한 삶에 대해서 쓰여진 부분이었다. 눈부신 빛 속에서 단지 한 글자만 눈부시게 달아올랐다. 그것은 '믿음'이란 글자였다.
진리의 낟알이 떨어져 빛이 나는 '믿음'이란 글자에는 아름다움과 선함의 빛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믿음'이란 글자에는 희망의 다리가 생겨나 영원한 나라의 헤어릴 수 없는 사랑에 가 닿았다.
현자의 돌

어릴 때나 젊을 때는 사랑이 제일 귀한 말인줄 알았다. 살다보니 사람 사이에 가장 소중한 약속들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현자의 돌>이라는 제목답게 나는 이 대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믿음을 통해 희망이라는 다리가 생겨나 비로소 사랑에 가 닿을 수 있다는 말이 의미있게 새겨진다.

인생의 모든 날 가운데 가자 성스러운 날은 우리가 죽는 날이다. 그날은 변화와 변신을 겪는 성스러운 날이다 지상에서 맞이하는 이 엄숙한 마지막 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최후의 날

이런 엄숙하고 성스러운 질문을 하는 철학적인 동화라니!! 어릴 때는 생각지 못했을 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아직 낯선 죽음이라는 성스러운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더 생각해 볼 부분이다^^;;

동화이지만 어떤 작품은 단편이나 중편소설의 분량만큼 꽤 긴 이야기들도 있었다. 달님이 본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했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도 자주 나와서 궁금해졌다. 168편의 동화 속에는 물론 공주 이야기같은 환상적인 동화도 있지만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때론 아가씨나 공주를 천박하게 표현하거나 외설적인 표현도 나오고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구리 클라우스>는 인간의 생명을 무섭게 다루기에 동화러기에 경악스럽기도 했다.

안데르센은 독자층을 어른과 아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어른을 위한 동화 이후 조금 더 각색해서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그리고 부모와 함께 읽어 나가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여기를 썼다고 한다. 해설을 읽으면서 궁금증이 다소 풀렸다. 나이팅게일이라는 새 이름이 종종 나와서 덴마크에 유명한 새인지. 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를 존경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세번째 사랑했던 여인이었다고 한다. 한 여자의 인생관이 안데르센에게 예술적인 영향력을 주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여러모로 다채로운 동화집이었다. 가끔 어디든 펼쳐 읽어도 좋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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